앞 못 보는 판사 맞이 … 북부지법 리모델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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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 사법 사상 첫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32·연수원 41기·사진)씨가 27일 오전 10시 대법원에서 임명장을 받고 법관 생활을 시작한다. 최씨가 근무할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도 신임 판사를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서울북부지법은 26일 “음성변환프로그램 설치, 전담 보조원 채용 등 최씨를 위한 업무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27일부터 북부지법 민사11부의 배석판사로 근무한다.

 최 판사에겐 소송기록 등 각종 텍스트 파일을 음성 파일로 바꿔주는 변환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가 지급된다. 북부지법 이창열 공보판사는 “프로그램은 최씨가 이미 사법연수원에서 사용한 것이어서 이용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를 위한 별도의 사무실도 마련됐다. 법원에선 통상적으로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 합의재판부가 판사실을 공동 사용한다.

최씨 역시 판사실에서 합의부 부장판사·배석판사와 함께 근무할 예정이다. 다만 각종 소송기록을 살필 때는 별도로 설치된 ‘지원실’에서 업무를 보게 된다. 음성으로 변환된 소송기록을 최씨가 이어폰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공보판사는 “최 판사가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해 청력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판사실에서 도서관이나 식당 등으로 이어지는 예상 이동 경로에는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됐다.

 아울러 법원은 최씨의 업무를 지원할 보조원 1명을 다음 달 중순께 채용할 계획이다. 보조원은 소송기록을 음성파일로 변환하거나 각종 문서와 영상자료를 최 판사에게 읽어주고 묘사해 주는 일을 맡는다. 보조원의 업무가 과다할 경우에 대비해 속기사 자격을 가진 직원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북부지법 측은 “앞으로도 최 판사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며 안정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시력을 점차 잃은 최 판사는 현재 불이 켜졌는지 정도만 알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2008년 시각장애인 중에선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지난달 사법연수원 수료생 1030명 중 40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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