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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저준위 원전센터 반대 명분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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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원전수거물관리시설(원전센터) 건립을 이원화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폐기물의 보관시설은 나중에 짓고, 방사능 노출이 거의 없는 장갑.작업복 등 중저준위 폐기물용부터 먼저 만들자는 것이다. 반대가 덜할 시설부터 만들어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고육책인 셈이다.

이 방법도 사실 미봉에 불과하다. 핵연료 처리도 고민거리라 당초 계획대로 두 시설을 함께 짓는 게 정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분리 건립'이란 미봉책을 동원한 것은 그만큼 사정이 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북 부안 사태를 비롯해 원전센터 건립이 근 20년 표류하는 바람에 원전 폐기물의 보관능력은 2008년께면 포화상태가 된다. 보관시설을 짓는 데 적어도 3~4년은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후보지 선정을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자력은 우리의 주요 에너지원이 됐다. 현재 전기의 약 40%는 원전에서 나온다.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옛날처럼 전기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데도 원전 덕이 크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 원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환경단체 등은 정부의 새 대안마저 안 된다며 막무가내 반대다. 그렇다면 아예 전기 없이 살자는 것인지, 아니면 원전은 쓰면서 폐기물은 모른 체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물론 오늘의 사태에는 원전시설의 안전도나 보관시설 현황, 센터의 필요성과 유치시 이점 등에 대한 설득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부 책임도 크다. 따라서 정부는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 설득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환경단체나 지역 주민들도 지금처럼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중저준위 폐기물 시설은 방사능 농도가 고준위의 100만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시설을 유치하는 곳에는 큰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