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희망, 테니스 황제 앞에서 절망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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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로저 페더러(아래)가 우승컵에 입맞추는 순간 앤디 머리가 애써 다른 쪽을 보고 있다. [멜버른(호주) 로이터=연합뉴스]

준우승에 그친 앤디 머리(영국·세계랭킹 4위)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에 서린 영국의 한(恨)은 이번에도 풀리지 않았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1위)가 31일 호주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머리를 3-0(6-3, 6-4, 7-6)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210만 호주달러(약 21억7000만원). 페더러는 개인 통산 16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차지하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 남자단식 최다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머리가 결승에 올랐을 때만 해도 영국 언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은 1936년 프레드 페리가 US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메이저대회 남자단식에서 74년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머리의 우승을 점칠 만했다. 머리는 이 경기 전까지 페더러와의 상대 전적에서 6승4패로 앞섰다. 페더러가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보이는 선수는 머리를 비롯해 라파엘 나달(7승13패·스페인), 질 시몽(2패·프랑스), 도미니크 에르바티(1승2패·슬로바키아)까지 단 4명에 불과하다. 또 머리는 결승이 열리기 전까지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준결승에서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3-1로 꺾을 때 내준 1세트가 이번 대회 유일하게 상대에게 내준 세트였다.

반면 페더러는 지난해 호주오픈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결승에서 ‘천적’ 나달을 맞아 우승컵을 내줬고, 인터뷰에서 울음이 터져 나와 황제 체면까지 구겼다.

하지만 올해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인 쪽은 머리였다. 머리는 메이저 결승에 두 차례(2008년 US오픈, 2010년 호주오픈) 올랐는데 모두 페더러에게 졌다. 메이저 결승에 22번 나섰던 페더러에게 경험에서 밀렸다. 페더러는 “머리의 가장 큰 문제는 결승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그리고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다 넘어간 듯했던 3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서 13-11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형택 MBC ESPN 해설위원은 “테니스는 상대적이다. 그토록 잘했던 머리가 페더러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 같은 플레이를 했다”고 말했다.

영국 대중지 더선은 테니스에 서린 한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더선 인터넷판은 31일 “다른 종목에서 스위스와 영국을 비교해 보자. 스위스는 54년 이후 월드컵 축구 8강 이상 오른 적이 없다. 또 스위스가 70년대 모터스포츠 스타 클레이 레가조니를 배출했지만 지금 F1은 루이스 해밀턴(영국)의 시대다. 테니스는 논외로 하자”고 보도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열린 여자단식 결승에서는 세리나 윌리엄스(미국·1위)가 쥐스틴 에냉(벨기에)을 2-1로 누르고 개인 통산 12번째 메이저 우승을 기록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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