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탐대실 한-중 마늘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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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늘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간에 벌어지고 있는 느닷없는 무역전쟁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수입을 억제한답시고 관세를 30%에서 3백15%로 대폭 올린 우리쪽 처사부터 신중치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전격 중단시킨 중국의 무역보복 조치 또한 과격하고 분별을 잃은 처사다.

지난해 중국산 마늘 수입은 8백98만달러였다. 반면 중국에 대한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출은 합쳐서 5억달러가 넘었다. 9백만달러를 아끼려다 5억달러를 날리는 꼴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없다.

우리 정부의 조치는 나름대로 불가피했고 절차 또한 이렇다할 하자는 없었다.

1997년 3백44만달러이던 중국산 마늘 수입이 3배 수준으로 늘어나자 국내 농가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농협이 피해조사 신청을 했고 무역위원회의 조사 및 피해 판정을 거쳐 재정경제부가 잠정관세 부과를 공식 결정했다.

우리측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중국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중국측과 두차례 실무협상에서 '마늘 수출을 줄여 주면 다른 수입을 늘려 주겠다' 며 절충을 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수입 급증에 따른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는 WTO에서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늘값 폭락에 따른 농가 피해는 수입 때문이 아니라 국내 생산의 급증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중국측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국내산 마늘은 9만t 증가한 데 비해 수입은 1천2백t밖에 늘지 않았다. 따라서 수입 마늘보다 작황에 대한 잘못된 예측과 농가의 절제없는 생산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관세 인상 등 긴급 수입제한 조치가 정당화하려면 '실질적 피해' 가 입증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단행한 까닭은 무엇인가.

총선 때 농민 표를 의식해 정치권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중국의 무역보복을 자초했다' 는 일부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런 국가적 망발도 없다.

중국의 마늘 생산은 우리의 18배에 달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마늘 산업을 초토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산 참깨와 고춧가루.고추.한약재 등 저가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국산으로 둔갑하는 등 국내 농가의 불만도 엄청나다. 우리 농민들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전체 무역 흑자의 거의 절반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고 교역 확대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마늘 문제로 경제협력 분위기가 얼어붙는다면 두 나라 모두에 비극이다.

특히 남북한 관계개선과 관련해 한.중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조관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격한 무역보복은 중국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측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이성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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