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에 앞서 리튬 부국 볼리비아와 MOU 체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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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20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사진) 한나라당 의원은 6월 3일 정치 2선으로의 후퇴를 선언했다. “정치 현안과 당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더욱 엄격하게 처신하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정치적으로 비칠 만한 언행을 삼가고, 자원 외교에 몰두해 왔다.
10월 26일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 주재 한국 대사 관저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이 의원은 에모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초대해 만찬을 베풀었다. 이어 환담을 하는 자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한국산 휴대전화의 뚜껑을 열고 배터리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리튬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우린 이걸 제조하는 기술까지 전수할 수 있습니다.”

자원 외교 올인, 이상득 의원

리튬은 2차전지의 원료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전기자동차 등에 긴요한 배터리가 그걸로 만들어진다. 리튬 없이 신성장 동력 산업을 키울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볼리비아의 리튬 매장량은 전 세계의 절반에 가깝다. 이 의원이 갑자기 배터리를 보여준 까닭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리튬 소재산업에 한국이 진출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의 얘기.

“지난 8월 이 의원을 비롯한 한국의 자원외교 특사단이 모랄레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리튬 개발 및 산업화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했다. 그 후 볼리비아 정부에선 ‘리튬 소재는 우리도 개발할 수 있으니 한국엔 돈만 내게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모랄레스 대통령에게서 들은 이 의원이 한국의 첨단기술을 전수받지 않고서 리튬전지 같은 제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휴대전화 뚜껑을 열어 보인 것이다.

이 의원의 얘기를 듣고 모랄레스 대통령은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특사단이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뒤 볼리비아 정부는 리튬 소재를 한국과 함께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0월 26일 조인식이 무산됐던 MOU에는 ‘양측이 리튬 소재 개발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등의 내용이 추가됐고, 지난달 당사자 간 서명이 이뤄졌다.”

특사단의 일원이었던 강남훈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자력 정책관은 “볼리비아에 대해서는 일본·중국 등도 적극 구애하고 있으나 우리처럼 MOU를 맺지는 못했다”며 “이 의원이 감동을 주는 외교를 한 게 주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 정책관에 따르면 모랄레스 대통령은 만찬 다음날 수도에서 승용차로 4시간 걸리는 곳인 코로코로 광미(鑛尾ㆍ채굴하고 남은 찌꺼기) 광산 시설 준공식에 참석해 달라고 이 의원에게 요청했다. 이 의원은 그날 오후 귀국하기로 돼 있는데도 그곳을 찾았다. 아침식사와 점심도 거른 채 행사에 참석, 한국이 볼리비아의 경제 발전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라파스의 공항으로 이동해 라면으로 배를 채운 다음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이 의원은 8월 페루와 브라질도 방문했다.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그를 만난 자리에서 SK에너지의 액화천연가스(LNG)사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동행했던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민간 기업 혼자의 힘으론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과제가 해결됐다”며 이 의원에게 두 차례 감사 편지를 보냈다. 브라질에선 석유공사가 석유 시추권을 따내는 일 등을 지원했다. 일본 기업이 한국의 부품·소재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일본 정·재계와 접촉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김신종 사장은 “이 의원이 최고경영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자원 외교 방식이 다른 정치인과는 다른 것 같다”며 “막연히 ‘서로 잘해 보자’는 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우린 이렇게 할 테니 당신들은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며 조목조목 짚어나가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사실을 얘기해도 자랑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나 민간 기업이 자원 외교에 도움이 된다고 요청한다면 아프리카든 남미든 어디든지 가겠다. 자원 외교를 해 보니 중요한 건 돈보다 진정성이더라. 과거의 선진국은 해외의 자원을 확보한 다음 이익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이문이 남으면 팔아버렸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린 현지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을 이전하며, 이익을 재투자하는 등 진심으로 자원 외교 대상국을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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