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예산안이 왜 국회에만 가면 누더기가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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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의 고질병이 도지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헌법상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긴 지 이미 오래다. 제때 처리하지 못한 예산안이 국회 상임위를 거치면서 볼썽사나운 누더기로 변하고 있다. 국회 12개 상임위는 내년 예산안을 정부안보다 무려 7조652억원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위가 3조원 이상을 더 얹었고, 보건복지위도 선심성 복지사업에 1조원을 늘렸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따로 없이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기를 쓰고 달려든 것이다. 그나마 전체 예산 규모를 간신히 300조원 이하로 맞춘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년 예산안은 정부가 편성할 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민생과 일자리 대책을 앞세우고, 4대 강 등 국책사업도 반영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도 신경을 써야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만큼 예산안 편성이 어려웠던 적도 없다”고 고백했다. 그런 예산안이 국회 상임위를 거치면서 또 한 번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의원들은 빡빡한 재정 상황에 아랑곳없이 지역구 표를 의식해 예산 나눠먹기·끼워넣기를 감행했다.

특히 국토해양위의 행태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4대 강 예산을 놓고 ‘날치기 통과’의 소란까지 떨었다. 그런 와중에 여야 의원들은 비공개 회의를 열어 도로·철도 등 지역구 예산 3조4492억원을 사이좋게 챙겼다. “토목 위주 사업 때문에 나라가 거덜난다”고 핏대를 세우던 야당 의원들은 이제 안면을 싹 바꿔 생색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81억원이나 늘어난 우리 지역 예산이 국토해양위를 통과해 1차 목표를 달성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자랑했다.

우리 국회는 예산 심의기간이 20일도 채 안 된다. 보통 120~240일에 이르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구조적으로 수박 겉핥기식 심의가 될 수밖에 없다. 애당초 치밀한 예산 심의는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번에는 재정건전성 원칙까지 온데간데없이 증발돼 버렸다. 벌써 7년째 예산안이 처리 시한을 넘겼고, 누더기 심의도 반복되고 있다. 국회의 잘못된 예산 심의 관행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