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장관 “테러와의 전쟁 참여는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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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사진) 외교통상부 장관이 26일 아프가니스탄 지방 재건팀(PRT) 확대와 그에 따른 보호 병력 파견 계획을 밝힌 것은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글로벌 코리아’다. 이를 위해선 아프간 대테러전에 대한 기여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현재 아프간에 파병 중인 국가는 42개국이다. 유 장관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 관리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지난주 방한해 우회적이나마 한국의 기여를 수차례 강조한 것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한반도 붙박이군에서 해외로도 전개하는 기동군으로 바뀌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는 풀이다. 한·미는 2006년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의 분쟁지역으로 이동·배치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정부는 주한미군이 아프간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한반도에 주둔토록 하기 위해선 아프간전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가 가장 큰 대북 억지력이라는 것이다. 유 장관은 “아프간 정세의 안정은 안정적인 주한미군 주둔 여건을 조성하는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간에 파견된 다산(공병)·동의(의료) 부대가 2007년 철수한 이후 한국의 아프간 지원은 30여 명의 PRT 활동이 유일하다. 그나마 바그람 미 공군기지 영내에 있는 병원에서의 의료 지원 중심이다. 이들에 대한 경호는 미군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PRT 인원이 130명으로 늘어나고 활동 범위도 넓어지면 더 이상 미군에 경호를 맡길 수 없다. “지원은커녕 미군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간 재건 요원을 파견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자체 병력을 보내 경호를 맡기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헌법상 전투 차원의 해외 파병을 금지한 일본과 한국 정도다. 정부가 PRT 보호 병력을 보내기로 한 데는 다산·동의부대 철수 이후 단 한 명의 군인도 보내지 않은 국가라는 점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당초 국제사회의 추가 지원 요청에 따라 5월 국무회의에서 PRT 인원을 85명으로 늘리고 활동 분야도 경찰 훈련과 전산 등 직업 훈련으로 확대하고, 병원과 직업훈련 센터를 신·증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의 지원 액수는 인건비를 포함해 모두 1억3000만 달러가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총 지원액(500억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로 여전히 미미하다. 일본은 20억 달러, 이란은 5억 달러를 냈거나 지원을 약속했다. 유 장관이 당초 계획을 수정해 추가 지원 계획을 밝힌 것은 이 같은 사정도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PRT 파견 지역으로는 기존 활동지역인 바그람 기지 인근이 우선 대상으로 꼽힌다. 미군이 장악하고 있어 비교적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바그람을 베이스로 해서 인근 지역으로 확대하는 개념”이라며 “조만간 2차 실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PRT를 확대하고 보호 병력을 보내는 것으로 추가 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국제사회는 한국의 군사 지원, 특히 이라크에서 능력이 입증된 민사작전 부대 파병이나 재정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고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민석 군사전문 기자, 예영준 기자

◆PRT=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의 약자. 아프간을 지역별로 나눠 주요 도시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군과 각국 정부, 민간인 등이 합동으로 치안 유지와 재건 활동을 하는 조직. 미군이 12개 지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이 9개 지역을 관장하고 있다. 한국은 바그람 지역을 중심으로 미군이 주도하는 파르완 주의 PRT에 2008년부터 의료 요원 등 민간인 전문가를 보내왔다.

◆전략적 유연성=미군을 한 지역에만 고정시키는 붙박이군에서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반테러와 반확산의 차원에서 미군을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바꾸기 위한 군사 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을 추진해왔다. 주한미군과 관련해서는 2006년 1월 워싱턴에서 열린 ‘동맹 파트너십을 위한 전략대화’에서 합의됐다. 주한미군을 군사적 필요에 따라 다른 분쟁지역으로 배치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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