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공문서 한자병용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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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문서 한자병용 추진방안이 논의됐다.

초등학교 한자교육 부활을 촉구하는 이들은 이번 발표에 적극 찬성하고, 한글전용 운동을 펼쳐온 이들은 반대에 나섰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본다.

◇ 파행적 국어교육 정상화 계기

새 정부의 공문서 한자 (漢字) 병용의 문자정책 (文字政策) 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용단이며 시의 적절하고 획기적인 정책으로서 환영하는 바다.

언어 (言語) 는 본래 사고 (思考) 로부터 표출된 것이지만,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오히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할 만큼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국가에 있어 문자정책은 그 나라 발전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 반세기동안 파행적인 문자정책으로 인해 동시대에 살면서도 한자를 배운 세대, 전혀 배우지 않은 세대, 조금 배우다 만 세대가 뒤범벅이 돼 부자지간에도 대화가 통하지 않을 만큼 국어생활 (國語生活) 이 기틀을 잃고 엉망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에 와서는 그 피해가 극심해 대학생들이 일반 신문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르고,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기현상을 가져 오게 됐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 심각한 문화위기 (文化危機)에 처하게 됐으나, 아직도 일반인들은 경제위기만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이러한 위급한 시기에 정부에서 여론을 올바로 수렴해 역사적인 문자정책을 단행한 것은 청사에 길이 빛날 새 정부와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용문서 (公用文書) 나 도로 (道路) 표지판 (標識板)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한자를 국어로서 교육할 때 엉망이 된 국어생활을 정상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7차 교육과정부터는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현저히 실행할 것을 재삼 강조하고 촉구하는 바다.

한자는 단순히 한자의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교육에 바탕이 되기 때문에 반세기 동안의 한자 교육의 단절은 곧 인성의 추락을 초래했다.

한국어 어휘의 75% 이상이 한자 어휘로 돼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있어 한자 교육은 영어나 프랑스어와 같은 차원에서의 외국어 (外國語) 교육이 아니라 바로 모국어로서의 국어교육임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마치 한자를 남의 나라 문자처럼 착각하고 배척하고 있는데, 한자를 배우자는 것은 곧 국어생활을 더욱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모함이다.

우리 나라는 한자만을 써야 하는 중국과는 다르다.

우수한 한글과 더불어 필요에 따라 한자를 혼용하면 어느 나라보다도 문자 활용의 이상국 (理想國) 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남겨 놓은 이상적 (理想的) 문자 여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우리의 위대한 전통문화를 계승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21세기는 한자문화권 (漢字文化圈) 의 동북아시대가 부상될 것을 서양의 지식인들도 예견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日本) 사이에 있는 한국에서 오로지 한글만을 배우고 쓰자는 것은 고립 (孤立) 을 자초할 뿐이요, 결코 국익 (國益)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그동안 한글전용을 주장하던 이들도 아집을 버리고 새 정부의 올바른 문자정책에 동참해 다 같이 경제위기와 문화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진태하 명지대교수.한국국어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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