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공기업 개혁 거꾸로 가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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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이 14일 ‘공공기관 선진화 관련 합의문’을 채택했다. 공기업 직원들의 정년을 공무원 수준으로 연장하고, 단체협약에서 노사 자치 원칙을 존중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합의 내용은 표현만 선진화 방안이지 사실상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공기업 선진화를 임기 중 해결할 현안 1순위로 지목한 대통령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각 부처는 산하 기관 군살빼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사실상 증원이나 다름없는 정년 연장 추진 방안 등을 내놓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는 민간 부문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단체협약 체결에 노사 자치 원칙을 천명한 부분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밝힌 ‘공기업 노사의 부조리 백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수많은 공기업 노조가 인사와 경영권까지 간섭하는 불합리한 단체협약을 무기로 사측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사 자치 원칙을 강조하는 여당의 합의문은 ‘불합리한 단체협약이라도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공공 부문 선진화 작업은 한시도 늦출 수 없다. 대통령의 공약이 아니더라도 공기업 부문은 방만한 경영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 정부 들어서도 공기업 비리가 숱하게 적발됐고 비효율에 대한 지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오죽하면 국민 70% 가까이가 ‘공기업 개혁은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고 적극 찬성했겠는가.

정부는 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인력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과감한 민영화와 통폐합을 계획대로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정부의 개혁작업을 적극 뒷받침하고 채찍질해야 할 책무가 있다. 시대적 요청에도 맞지 않고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도 찬물을 끼얹는 식의 ‘거꾸로’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원칙까지 버려선 곤란하다. 공기업 개혁에 앞장서야 할 집권 여당이 오히려 방해한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