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없는 내각…어떻게 되나]장관임명 봉쇄 국정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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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대중대통령이 25일 아침 일산 자택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먼저 꺼낸 얘기는 'JP총리' 임명동의 문제였다.

金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야당의 협조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 고 물었다.

청와대는 오전만 해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의 총리임명동의가 불발되자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박지원 (朴智元) 공보수석은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오늘을 걱정했다" 면서 한나라당의 비협조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감정에 상관없이 새 정부는 첫 걸음부터 파행 (跛行)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은 취임했는데 국정을 이끌어 갈 손발인 정부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총리임명동의 무산은 총리 한 사람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정부 전체에 대한 '비토' 나 마찬가지다.

이는 새 정부가 처한 두 가지 특수상황 때문이다.

첫째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이기에 신임총리의 제청을 받아 내각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데 총리가 국회인준을 못 받는 바람에 장관임명을 제청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총리와 장관이 없는 정부가 된다는 얘기다.

둘째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각 부처와 실.국 등 직제까지 새로 만들어 놓았는데 새 총리가 이를 시행하는 공포안에 서명하지 못할 경우 정부조직 전체가 새 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국정마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가 가능하지만 어느 방법이든 국정운영의 파행과 공백은 불가피하다.

첫째 해법은 김종필자민련명예총재를 총리서리 (署理) 로 임명하는 것이다.

문제는 '서리' 제도에 위헌 (違憲) 시비가 있다는 점이다.

국회 임명동의 전에 총리서리가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법률위반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JP를 서리로 임명할 경우 이런 논쟁이 재연될 것이며, 야당시절 서리제도의 위헌성을 주장했던 金대통령이기에 JP를 서리로 임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해법은 지금의 고건 (高建) 총리를 그대로 두는 방법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에 高총리가 정부조직법에 서명해 새 정부를 출범시키면 된다.

그러나 高총리가 장관임명 제청권까지 행사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산뜻하게 새 출발하는 정부가 과거의 총리, 또 그가 제청한 장관으로 출발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려해 정부조직법을 공포, 현장관들을 모두 해임한 뒤 차관을 새로 임명해 국정을 끌어간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박지원수석이 이 방안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이 경우 국무회의가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각종 법령을 의결.공포할 수 없다.

따라서 '차관대행' 체제는 법령이 뒷받침되는 정부의 주요정책을 실천할 수 없다.

마지막 해법은 JP도 고건총리도 아닌 새 총리를 임명해 국회동의절차를 거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JP를 총리로 임명하겠다는 약속과 어긋나는 것으로 JP 자신과 자민련측에서 동의해 줄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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