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지하철노사 씁쓸한 '빅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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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민들로부터 우려 섞인 눈길을 받았던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 방침이 11일 오후 극적인 과정을 거쳐 서울지하철공사측이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함으로써 철회됐다.

최근 조성된 '노사정 대타협' 분위기를 냉각시킬 뻔했던 공공기관 노조의 첫 실력행사 움직임이 '빅딜' 을 통해 일단 진정된 셈이다.

비록 파업 철회가 이뤄지기까지에는 노사의 자율적인 타협보다는 정치권의 막후 조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했으나 경위를 파국을 막은 것은 노사평화와 경제안정이라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큰 다행이다.

파업 조짐만으로도 IMF 이후 어렵게 상승하던 외국투자가 주춤하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금리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등 금세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달 초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시작된 노조의 힘겨루기성 (?) 행보와 “어떠한 경우에도 소송취하는 없다” 고 버티다 파업 일보직전에야 외부의 '훈수' 로 입장을 선회한 서울시의 대응은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사실 이번 파업 줄다리기의 빌미가 된 '51억 손해배상소송' 의 내용인 94년 서울지하철 노조 파업은 쟁의행위 금지기간중에 이뤄진 외부 (전국기관사협의회) 와의 동조파업이어서 불법성이 짙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법원에서 노조 패소가 예상되자 노조는 파업이란 무기를 내세워 소취하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해 소송을 취하한 서울시도 노조의 파업방지라는 '대의' 는 달성했지만 그리 잘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시는 “시민의 재산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소송인 만큼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 며 맞서 왔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해결을 통해 결과적으로 소송을 노조 길들이기에 악용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때문에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경우 이같은 '빅딜' 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후유증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근로조건과 무관한 노조의 어떤 행위도 정치적 고려를 통해 얼마든지 용납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 를 남긴 것이다.

파업 철회후 시 간부들 사이에 “정치 논리로만 문제를 풀면 앞으로 노조의 일방적 주장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며 내부적으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의 간섭은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시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노조의 정치활동이 공식 허용된 마당에 앞으로의 노사관계나 노동정책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장세정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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