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권 각자 태도 분명히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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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권당총재가 명예총재인 대통령의 탈당을 공식요구하는 전대미문 (前代未聞) 의 여권 대분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총재가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표면상의 명분은 '대선 공정관리' 이지만 실은 검찰의 비자금수사 유보 결정이 계기가 된 것이 분명하다.

金대통령이 비록 탈당을 거부했지만 이로써 양자 (兩者) 관계는 사실상 결별을 넘어 적대 (敵對) 관계가 된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신한국당 내부상황과 대선정국은 더욱 혼미.혼란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당 (黨).정 (政) 관계가 무너졌고, 이 나라에 집권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호한 파행적 (跛行的) 정치체제가 돼버렸다.

이런 상태가 정치불안과 전반적인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는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과 집권당이 정국과 사회의 안정은 커녕 대립과 갈등으로 우리사회를 전혀 예측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고 그들 스스로가 정치.사회 불안의 원천이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엄중히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혼란하고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방향으로 수습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金대통령과 신한국당의 각 파가 더 이상 상황을 혼란.혼미하게 만들게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속셈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金대통령은 신한국당의 후보교체문제 등에 대해 표면상 언급을 않으면서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끊임없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비자금수사 유보결정의 뒤에도 金대통령이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金대통령 자신은 이런 문제에 관해 전혀 말이 없고, 그런 침묵이 혼미.혼란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젠 金대통령도 밝힐 건 밝혀야 한다.

비자금수사 유보를 지시한 것인가.

또 이회창후보의 교체를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방관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관해 金대통령이 입장을 분명히 해야 신한국당의 상황과 대선정국이 좀 더 분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신한국당의 비주류와 후보교체론자들도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수군거릴게 아니라 당헌.당규에 따라 교체론을 당의 결정으로 추진하든가, 아니면 지난번 전당대회 결정을 승복하든가, 탈당하든가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혼란상태를 더 이상 끌고가서는 안된다.

李총재측도 경선당선자라는 정통성만 내세울게 아니라 자신의 낮은 지지율과 비관적인 당선 가능성을 극복할 처방과 전략을 제시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

그런 책임을 다 했는데도 비주류가 따라오지 않을 경우 그 역시 총재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각자가 이처럼 태도를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만 오늘의 혼란과 혼미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속셈을 감추고 지지율 추이나 살피면서 유리한 선택을 해보자는 기회주의적 태도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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