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눈치에 밀리는 정책 수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 " 혹여 오해받을 일은 삼가라는 속담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생과 관련된 정책을 오해가 두려워 제때에 수행하지 않고 어물어물 미룬다면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요즘 정부 안에는 갖가지 오해가 무서워 덮어두고 있는 현안이 수두룩하다. 국토계획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지자체 선거와 총선 때문에 유야무야됐던 제3차 수정안은 물론이고, 올해말까지 하겠다던 4차 국토계획조차 대선에 밀려 시안마련이 불투명한 상태다.

발표된지 3년이 되는 광역권개발계획은 부산권과 아산만권 개발계획만 수립된 채 나머지 5개 권역에 대한 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며칠전 발표된 율촌 제2지방산업단지 지정도 광양만권 광역개발 계획의 일부로 포함돼야 마땅한 내용이다. 결국 상위계획은 확정되지도 못한 채 개별 사안들이 도리어 먼저 결정되는 꼴이다.

이런 식으로 할 바엔 아예 국토계획이나 광역권개발계획과 같은 상위계획은 필요없는 일이 돼버릴 것이다.

낙후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개발촉진지구의 지정도 마찬가지다. 올해초 건교부의 업무계획을 보면 이미 지정한 11개 지구중 7곳의 개발계획을 확정하고, 올해중 새로 10개 지구를 추가 지정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표된 개발계획도 추가지정이 없는 상태다. 95년 마련된 도시계획법의 개정안은 지방화.광역화 등 도시환경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로 도시계획 권한을 이양하고, 도농 (都農) 통합시의 신설에 따라 도시계획체계를 정비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루고 미루다가 3년만에 겨우 국회에 제출했으나 이번에는 건설교통위원회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 도농통합시나 광역시에는 기본계획수립 등 도시계획법 개정안이 확정되기를 기다리는 사안이 허다하다.

결국 지자체 선거때는 특정 지역을 도와준다고 오해받을까봐, 국회의원 선거때는 득표에 영향을 줄까봐, 이제는 대통령선거 선심용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정치적인 눈치를 보느라 주요 계획이나 민생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는 계속 이어진다. 선거를 핑계로, 오해받기 싫다고 정부가 눈치만 보고 정책 수립이나 집행을 늦춘다면 계속되는 선거에 밀려 국가의 기본적인 계획은 누가 세우고, 민생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신혜경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