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건설·조선 구조조정, 하려면 제대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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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1차 신용평가를 한 결과 건설·조선업체 111개사 가운데 퇴출 대상인 D등급은 1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도 14개 회사에 그쳤다. 대부분이 A등급(정상)과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 판정이 모범답안이라면 정말 기쁜 소식이다. 건설·조선업계의 아우성은 전부 엄살이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전국 미분양 아파트만 해도 16만 채나 된다. 한 채에 1억원씩 치더라도 16조원이 잠겨 있다. 상당수 중소 조선업체들은 수주를 거의 못하고 금융회사에서 선수금환급보증도 못 받고 있다. 한마디로 1차 평가 답안과는 아득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을 축소하려는 은행들의 안간힘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퇴출기업이 늘어나면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중간에 혼선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대주단 협약은 경영권 보장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금융회사 담당자의 면책조항을 신설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채권금융단의 1차 평가 결과는 이런 진통을 무색하게 만든다. 태산을 뒤흔든 요란 끝에 겨우 쥐 한 마리 잡은 꼴이다. 이런 식이라면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은행들이 스스로 매긴 채점표대로 B등급 기업에 과감하게 신규 대출을 해줄 자신이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은행들은 쓰러질 기업까지 부도유예협약에 포함시켜 채무 만기를 연장해줬다. 그러면서 신규 대출은 한사코 기피했다. 그 결과는 연쇄부도였다. 결국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미련하게 이런 실패를 왜 반복하려고 하는가.

채권금융단은 구조조정에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을 계속 끌어안는 것은 자살행위다. 정부도 무조건 압박만 해선 안 된다. 지금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겁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정부가 채권은행 간의 손실분담 방안부터 교통정리해 주고, 구조조정에 따른 화끈한 정책자금 지원도 약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