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특별교부금 근본적 수술 못할 바엔 폐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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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감사원이 내놓은 교육과학기술부 특별교부금 운영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그동안 우려했던 일들이 적나라하게 현실로 드러난다. 장·차관과 간부가 자신들의 모교나 자녀 학교에 교부금을 건네주고, 지원 근거가 없는 사업에 인심 쓰듯 퍼줬다.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돈을 지원한 사례도 수두룩하다. 지난해 교과부가 특별한 교육수요를 위해 지방에 내려준 특별교부금은 모두 9446억원. 이 중 87%가 규정을 어긴 채 엉뚱한 곳에 사용됐다. 교과부 공무원들은 나랏돈을 자신들의 주머닛돈으로 알았단 말인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국가 운영 행태에 기가 막힐 뿐이다.

물론 특별교부금 문제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 그 폐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만큼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감사원은 교과부에 관련 공무원 징계를 요구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 정도로는 특별교부금제도가 장·차관의 생색내기용이나 여야 정치인의 나눠먹기용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차제에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공무원 멋대로 하는 주먹구구식 집행을 막는 장치 마련이 우선이다. 법률에 특별교부금 배분 기준과 지원 절차,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세부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실수요와 무관하게 세금이 새는 걸 막을 수 있다. 사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교과부 자체 감사는 물론이고 감사원 감사를 통해 사업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국회의 사후 승인·심의제도도 도입해 감시망을 촘촘히 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특별교부금 규모를 확 줄이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 특별교부금을 일반예산으로 돌려 보통교부금이나 양여금, 국고보조금 등의 형태로 투명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공무원의 전횡과 정치권의 간섭을 줄일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에 주는 특별교부세의 폐해도 교과부의 특별교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세금의 주인인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특별교부세·교부금 제도의 손질을 미룰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