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 'No'~자원봉사 송년회 가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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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에 바람이 매섭게 불어 꽤 쌀쌀했던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강남보육원에 푸른 조끼 차림의 건장한 남녀 10명이 들어섰다. 대부분 30대 안팎인 젊은이들의 정체는 현대제철 구매본부 직원들이다.

[사진제공=·현대제철·강남보육원]

직원들은 보육원 2층 도서실로 올라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는 10명의 아이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한 사람씩 짝꿍을 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이들과 다정하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종이 액자 틀을 만든 뒤 그 안에 사진을 넣었다. 알록달록 색종이도 오려 붙이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떼어 붙이니 금세 특별한 추억이 담긴 액자 카드가 만들어졌다. 찬 바람이 보육원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초등학교 1~6학년인 보육원 아동들은 이날 '삼촌"누나'들과 액자를 만들며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냉기를 잠시나마 잊는 듯 했다. 액자를 함께 만들 짝꿍을 정하면서 "다른 사람과 바꿔달라"며 장난치기도 하고 명찰에 다른 이름을 낙서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삼촌’이라며 잘 따랐던 강신재(40) 대리의 명찰에는 원래 이름대신 '순대'라고 적혀 있었다. 짝꿍 아이가 사인펜으로 장난을 친 것이다. 그는 "결혼을 안 해서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봉사를 하면서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강씨는 평소 팀원들과 함께 이 보육원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거나 등산을 다니는 등 꾸준하게 봉사 활동을 해왔다. 그는 “얼마 전 퇴근을 하고 회사 팀원들끼리 축구를 하다가 아이들이 생각나 발야구와 피구를 한 적이 있는데 매우 좋아하더라"고 전했다.

젊은 남녀 직원들이 단체로 보육원을 찾은 이유는 다름아닌 송년회를 열기 위해서다. 술과 식사로 흥청망청 연말을 보내는 대신 올해는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사진 액자를 만드는 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저 연말에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송년회를 오로지 자원봉사로 대체 하겠다는 생각이다. 송년회를 자원봉사로 대체한다는 발상은 의미는 있을 지 몰라도 자칫 강제적인 분위기에 재미없다고 느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사회 생활하면서 말 그대로 '한창'때일 직원들 사이에서 볼 멘 소리도 나올 법 하지만 반응은 정 반대였다.

구매본부 사원 정혜란(33·여)씨는 "여성 입장에서는 술이 없는 송년회는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남자 직원도 반기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상훈(32)씨는 "술이나 식사 등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욕구는 다 한 순간에 드는 생각"이라며 " 평소 회사 차원에서 봉사 활동할 기회를 많이 줘서 이번 송년회 컨셉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지난 2년 간 꾸준히 보육원 봉사 활동을 해왔다. 그는 "아이들과 활동하며 오히려 어른인 내가 배울 때가 많다"며 "오늘은 스카치테이프를 좀 많이 썼더니 아이들이 되레 '아껴 쓰라'고 잔소리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서초구청은 최근 '자원봉사 송년회'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서초구자원봉사센터 신은희 과장은 "특히 서초구 일재 기업들이 문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며 ”불경기에도 반응이 매우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현대제철은 지난 2005년부터 자원봉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온 케이스다. 이 회사 CSR추진팀 고선정 대리(사회복지사)는 "회사 차원에서 일정한 봉사비용을 팀 단위로 지원하고 있다"며 "평소 독거노인 전화말벗 봉사활동이나 설, 추석에 차례상에 필요한 제수용품 전달 봉사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연말에 반짝 1회 성으로 끝나는 봉사활동은 의미가 없다. 관건은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다. 신은희 과장은 "보육원 자원 봉사는 1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오는 분들만 할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혹시 상처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올게'라는 인사를 하면 아이들이 ‘진짜?’라고 되물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며 "꾸준한 관심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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