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울타리 속의 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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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사립대와 정부의줄다리기가 시작된다.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립대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10% 이상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 비해 정부는 5% 이내로 인상폭을 낮추라고 종용하고 있다.특히 올해에는 경제가 안 좋고 물가안정이 정책의 우선 목표가 되어 있기때문인지 재정경제원의 인상 억제 의지는 매우 강력해 보인다.
보도에 의하면.5%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학생 정원을 동결하고 각종 국고지원을 유보하며'더 나아가.학교법인에 대한 회계감사와 대학의 수익사업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라고 한다.
사실 대학 등록금의 적정한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판단하는 것은쉬운 일이 아니다.학생 등록금에 재정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우리나라 사립대의 현실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대학등록금이 이미 서민가계에 부담이 되는 수준이며 교육의 질이 이에 걸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정부당국자나 학부모들의 의견에도 경청(傾聽)할 점이 있다. 물론 본질적 문제는 고급인력 양성에 필요한 적절한 투자 규모와 이 가운데 수익자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일 것이다.그러나 매년 되풀이되는 등록금 인상 논쟁은 이러한 본질적인 논점보다 물가 억제와 같은 교육과 아무런 관계없는 점에서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에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게다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하는 정책수단들이매우 구(舊)시대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대학의 학생 증원이나 국고지원 사업은 등록금과는 관계없는 사안이다.따라서.5%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대해서는 학생 정원을 동결하고 각종 국고지원을 유보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타당하지 못하다.학생 정원은 그 대 학의 교육시설과 여건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정부시책에 순응하는지 여부가 판단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자구(自救)노력 지원비.시설지원비등 대학에 대한 국고지원 사업의 목적은.교육연구 환경의 개선'이지.물가안정'이 아 니므로 등록금 인상과 이들 국가지원금을 연계시키는 것은 국회에서 승인받은 예산의 사용목적에 어긋나는 일이다.
.학교법인에 대한 회계감사와 세무조사 실시'는 더욱 치졸하고문제 있는 발상이다.마치 과거에 공중목욕탕 요금이나 쇠고기값이들먹이면 업소에 대한 위생검사를 실시한다고 위협해 환원시키던 사례를 생각나게 한다.정부 마음에 들건 안 들건 회계처리나 세금납부에 의문점이 있으면 감사를 하는 것이지 말 잘 듣는 학교법인에 대해서 있는 문제도 덮어주고 괘씸하면 굳이 털어 먼지를내겠다는 것인가.
언필칭(言必稱) 등록금은 대학에 결정권이 주어진 자율화(自律化)된 사안이다.그러나 민간에 자율권이 주어진 사안도 정부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통제하려 들었고,이런 저런 규제에 아직도 온몸이 묶여있는 민간기구들은 괘씸죄가 무서 워 마지못해따라가곤 했다.결국 자율이라고 하지만 여러 끈에 묶여있는 자율이요,울타리 속에서의 자율일 뿐인 것이다.그 울타리를 벗어나면무슨 끈이 자기 목을 조를지 모르므로 불쌍한 민초들은 불안감 속에서 위의 눈치를 살피는데 익숙해 져 있다.그러니 정부 권력자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고 민간의 창의적 활력은 점점 고갈돼 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겠다고 나섰으니 민간 자율에맡긴 것은 명실공히 맡겨야 한다.또한 행정규제를 투명하게 하여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선(線)을 분명히해야 한다.물론 정부규제 철폐와 행정투명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수준 선진화도 필요할 것이다.정부 규제가 자기에게 불리할 때에는.규제철폐'를 외치다가도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고 공중목욕탕 요금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면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자율화에 따른 권한과 책무를 같이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을 때 자율을 가둬 놓은 울타리도 없어질 것이다.
吳世正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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