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 이상 갑부 820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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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22면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先富起來)’.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초기에 선언한 명제다. 중국인들은 일제히 돈을 향해 달렸고, 신흥 부호들이 속속 탄생했다. 중국 부호 연구가 후룬(胡潤)에 따르면 10억 위안(약 2000억원)을 넘는 재산을 가진 부호는 820명에 이른다. 5억 위안 이상은 2000명을 훨씬 넘는다.

7.부호들 -매점매석이 IT 붐으로

1980년대 초 부호는 ‘거티후(個體戶)’에서 나왔다. 거티후란 직원 7명 이하의 소규모 자영업체를 가리킨다. 노점상부터 시작한 사람이 많았다. 해마다 부호 명단 10위권에 오르는 시왕(希望)그룹의 류융싱(劉永行)·류융하오(劉永好) 형제는 병아리를 내다팔다 사료사업으로 부를 쌓았다.

80년대 후반에는 ‘다오예(倒爺·불법 물품 거래자)’가 많았다. 정부 계획가격과 시장가격 차이를 이용해 폭리를 얻었다. 관료들과 결탁해 물건을 정부가격으로 사들여 시장가격으로 파는 장사였다. 이들은 이중가격제가 폐지되는 90년대 중반까지 신흥 부호층의 자리를 굳혔다.

90년대 초에는 증시가 부의 원천이었다. 90년 12월 주가지수 100포인트에서 시작된 상하이증시는 93년 2월 1558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주(株)테크에 성공한 신화들이 잇따랐다. 더룽(德隆)그룹 탕완신(唐萬新) 회장이 대표적이다. 90년대 후반에는 ‘관상(官商·관료 출신 상인)’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많은 관료가 창업 대열에 동참했다.

힘 있는 자리에서 얻은 정보와 인맥이 비즈니스 파워였다. 국무원 사무관리국을 그만두고 창업 대열에 뛰어든 융유(用友)그룹 왕원징(王文京) 회장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에는 정보기술(IT) 분야의 거부가 많았다. IT붐을 타고 소후 창업자인 장차오양(張朝陽),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云) 등이 부호 반열에 끼었다. 부동산 개발 바람을 탄 거부도 급증했다. 중국 500대 부호 중 17%가 부동산으로 돈을 거머쥐었다. 펑룬(鵬潤)그룹 황광위(黃光裕)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부모 세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 부호’가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최고 부호로 꼽힌 양후이옌(楊惠姸26여) 비구이위안(碧桂園) 이사가 대표적이다. 중국도 이제 대(代)물림이 나타날 만큼 부가 축적됐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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