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부실정치'와 작업중지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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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전 삼풍백화점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참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건설현장의 적당주의와 부실공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언론들은1주기 특집을 통해 이를 고발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관찰과 고발에 불과하다.
삼풍참사는 단순한 「건설사고」가 아니다.이는 경주마처럼 옆을가린채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의 총체적 사고였다.즉 삼풍참사는 수단과 과정,나아가 장기적인 폐해야 어찌됐든 눈앞의 가시적인 결과만 만들어내면 그만이라는 개발독재정권의 「성과제일주의」가 낳은 필연적 결과다.문제는 우리사회 어느 구석도 이같은 성과제일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이는 문민정부 출범후에도,삼풍참사이후에도 개선될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만 해도 그렇다.통합야당에 표를 던져준 민의는 아랑곳없이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을 「독일병정」처럼 「줄서기」시켜 분당(分黨)해 나온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 총재의 정계복귀과정으로부터 시작해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기고 보자는 「삼 풍백화점식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4.11총선,과정이야 어찌됐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보자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영입작업과 나머지 양김(兩金)의 국회를 볼모로 한 투쟁이 맞부닥친 「기(氣)꺾기 싸움」등 참사이후 지난 1년간의 정치는 어느 하나성과제일주의로부터 벗어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건설부실공사야 「기껏해야」수백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지만 21세기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부실정치」는 5천만 국민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실 사고당시에도 그랬고,이번 1주기에도 그랬듯이 언론은 희생자중 국내 최고급 백화점답게 유독 많았던 사회적 명사들과 그친인척등의 이야기를 주로 전하고 있다.죽음 앞에서 무슨 슬픔의정도 차이가 있으련마는 어느 의미에서 가장 슬 프고 불쌍한 희생자였으면서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건물의 이상조짐등 생명의 위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종업원들이다.
이와 관련,주목할 만한 것은 시기적으로 우연히 삼풍 1주기에즈음해 쟁점이 된 근로자들의 작업중지권이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사회의 심각한 산업재해문제와관련해 올해 단체협상에서 일부 노동조합들이 위험사태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근로자들에게 주도록 요구했고,이를일부 기업이 수용하자 경영자총협회가 경영권침해 라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노동부는 예상대로 경총의 손을 들어줬다.경총의 주장대로근로자들의 작업중지권 남용 가능성이 우려될수 있다.그러나 만일삼풍백화점 종업원들이 작업중지권을 갖고있었다면 그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수백명에 달했던 희생자 모두의 생명 을 구할 수 있었으리란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우리의 「부실정치」에 적용해 보면 사태는 더욱 명확해진다.3金과 국회의원들간의 관계는 근대적인 노사관계라기 보다 「봉건적인 주종(主從)관계」에 가깝다.따라서 여기에 근대적 노사관계의 작업중지권을 적용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업중지권을 국회의원들에게도부여해준다면 한국정치는 지금보다 엄청나게 나아질게 분명하다.3金이 국민의 복지는 아랑곳없이 지금처럼 추한 권력욕에 사로잡혀날치기통과.몸싸움.의장석 점거등 자신들이 생각 해도 낯 뜨겁고반국민적인 「작업지시」를 내릴 경우 작업중지권을 발동해 3金의「독일병정」이 되기를 거부할수 있어야 한다.
21세기가 내일 모레인데 언제까지 3金의 「삼풍식 부실정치」를 반복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실공사와 삼풍식 부실정치,그리고 작업중지권.삼풍 1주기와 국회파동을 계기로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話頭)다.
◇필자 약력▶44세▶서울대 정치학과졸▶미국 텍사스주립대학 정치학 박사▶동양통신기자▶전남대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교수(현)▶저서『한국정치학의 새구상』『전환기의 한국정치』등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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