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변화 싹 보인 조순 서울市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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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의 현실에 대한 조순(趙淳)시장의 진단과 앞으로의 시정(市政)기조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살 만하다.서울시가 아주 크고 부실한 건축물과 같다는 비유는 적절하다.성수대교.삼풍백화점붕괴를 비롯한 잇따른 대형사고를 통해 시민들은 행정의 최우선적과제가 삶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서울시를 포함한 모든 정부기관들은 사고당시에만 각종 대책과 약속을 남발하며 법석을 떨뿐 시간이 지나면 예전 그대로신규사업 위주.전시 위주의 행정으로 되돌아가곤 했다.그것은 그토록 엄청난 사고를 반복해 겪고도 신규사업비와 기존 시설물등의유지.관리비를 50대50으로 책정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유지.관리 예산은 여전히 전체 사업비의 10~15% 수준에머무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기 지하철공사도 언젠가는 해야 할 사업이다.국가 상징로 건설계획도 장기적인 검토 대상은 될 것이다.낡고 비좁은 시청 청사를 새로 지을 필요성도 인정된다.그러나 지금 그런 일을 새로벌일 때인지는 의문이다.趙시장의 말대로 비가 새 고 벽이 무너지는 판에 청사 새로 짓고,국가 상징로를 만들고,2기 지하철 공사도 아직 멀었는데 또다시 3기 공사를 벌일 때인가.
일에는 순서가 있게 마련이고 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3기지하철 공사만 해도 그렇다.일을 떠벌리기만 한다고 해서 잘하는일이 아니다.2기 지하철도 한꺼번에 일을 벌여 공사는 부실하기짝이 없고,자금난.인력난등으로 예정된 공기( 工期)도 지키지 못한채 교통 체증만 가중시키고 있는 판에 무슨 여력으로 또 새일을 벌일 것인가.
현재 서울의 각종 시설물들은 마치 사용연한이 지난 내구(耐久)용품과 같다.이들을 보수해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급선무다.또한 지금 벌여놓은 사업만이라도 뒷날에 후회가 없도록 잘 마무리짓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새 시정을 펴려면 예산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이제까지의 행정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사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그에 따라 예산을 다시 짜야 한다.
서울시가 다른 지자체의 모범과 모델이 될 수 있는 변화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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