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뷰티풀 게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무대에 축구공이 나타났다. 골대도 등장한다. 태클과 빠른 패스워크, 현란한 드리블도 빠질 수 없다. 언뜻 보면 지네딘 지단의 턴 동작과 이영표의 헛다리 집기를 연상시킨다. 공중으로 뻥 차 올린 공이 실제 관객에게 툭 떨어지는 첫 장면, 객석은 관중석이 된 듯 싶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최신작 ‘뷰티풀 게임(사진)’은 금기와의 싸움이다. 스포츠, 그 중에서도 한 팀 11명이나 되는 축구 경기를 무대화한다는 건 불가능으로 취급되곤 했다. 이런 고정관념에 강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1막 결승전 씬. 긴박한 음악에 맞춘 배우들의 움직임은 실제 축구와 현대 무용의 교집합이다. 강슛을 날리는 모습은 우아한 다리 올리기로, 포백 수비진의 일사불란함은 남성미 넘치는 군무로 탈바꿈한다. 올 한해 한국 뮤지컬이 길어올린 최고의 명장면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축구는 단지 외양일 뿐이다. 정치와 신념, 그리고 개인의 황폐함 등 작품엔 사회적 메시지가 가득하다. 애절한 사랑 혹은 배꼽 잡는 코미디가 대부분인 기존 뮤지컬과의 차별점이다. 그것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배경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다. 수백년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는 오랜 투쟁끝에 마침내 주권을 회복한다. 단 북아일랜드 6개 지역만은 여전히 영국의 통치하에 남아 있다. 억압의 시기, 어떤 이는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심해하는 반면 어떤 이는 이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한다.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입단 테스트를 앞둔 주인공 존(박건형 분)이 전자라면, 그의 친구 토마스(김도현 분)는 후자다. 어느날 절친한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은 토마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그는 70년대 유럽을 유혈사태로 점철시킨 북아일랜드 공화군(IRA)을 택한다. 쫓기는 토마스를 도와준 존은 테러리스트 탈출에 공모했다는 누명을 쓰고 영국 경찰에 잡혀 철창행 신세를 지고 만다. 그것도 무려 7년이나. 촉망받던 축구 유명주는 점점 눈에 핏기 서린, 분노의 인간으로 변모해 간다. 전쟁이, 사회가, 그리고 이념이 얼마나 한 개인을 왜곡시키는 지 작품은 증언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웨버의 선택은 드러난다. 영국이 숨기고 싶은 치부를, 그것도 영국 출신의 웨버가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기에 충분하지만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독립을 위해 자신을 버린 토마스는 삐딱한 소영웅주의자 혹은 조직 논리에 함몰돼 친구까지 배신하는 냉혈한으로만 그린다. 핍박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슬쩍 건너뛴 채 개인의 비극적 상황에만 초점을 맞춘다. 정치적 허무주의이자, 영국식 침략 논리를 훨씬 더 세련되게 포장한 셈이다. 일제 치하와 70~80년대 군부 독재를 경험한 우리로선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다소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내년 1월13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