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223 - '어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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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콩을 보고 팥이라고 우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막무가내로 내세운다는 뜻으로, 억지스럽게 고집을 부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말이 되지도 않는 것을 맞는다고 우기거나 잘 안 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고 고집을 피울 때 '어거지'란 말을 자주 쓴다.

"독재자의 공통된 속성은 남에게 강하고 자신한테는 약하다는 점이다. 독재자는 쉽게 말하면 남한테 어거지를 쓰는 사람인데, 성장환경이나 어떤 부분에서 결핍된 것이 많은 사람,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독재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대영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은 자국의 문화재는 힘을 이용해 다시 찾아오지만, 자국이 보유한 타국의 문화재는 어거지 논리로 반환해 주지 않습니다. 강대국의 힘을 이용해 국제법에 입김을 넣고 자국에 유리하게 적용시킵니다."

"1등에 당첨된 로또 복권을 자기가 분실한 것이라면서 어거지 쓴 그 아줌마는 어떻게 됐나요?"

이처럼 '어거지'란 말이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지만 표준어가 아니다. '억지'라고 해야 맞다. '억지'보다 느낌이 작은 말로는 '악지'가 있다.

'어거지'보다는 '억지'가 발음이 더 세고 고집스러움도 더한 듯싶다. '억지 춘향이'를 '어거지 춘향이'라고 해 보자. 뭔가 좀 약한 느낌이 들며 어색하지 않은가.

때로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억지보다는 순리를 따르는 것이 더 낫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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