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 과연 하자는건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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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무대 의혹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를 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국회가 법에 따라 모처럼 국정조사권을 발동했는데도 관련기관들의 자료제출 거부로 사실상 조사를 못하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방부·병원·검찰 등은 국회의 자료요구에 한결같이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또 은행감독원이나 은행들 역시 국회의 계좌추적 요구에 대해 법을 내세워 거부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실상 국정조사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법은 물론 지켜야 한다. 국정조사라고 하여 법을 어기면서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관련기관들이 국정조사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법이전에 조사에 협력하는 최소한의 자세나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같아 문제다. 법 때문에 낼 수 없는 자료는 물론 내서는 안되겠지만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조사에 도움이 될 자료를 챙겨본다거나 하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아예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
우리는 어떤 자료가 제출 가능하고,어떤 자료가 제출 불가능한지는 알 수 없으나 관련기관들이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그런 법근거를 방패막이로 국정조사를 기피하려는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스럽다. 특히 국방부·검찰·은행감독원 등 정부기관들이 한결같이 이런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혹시 정부가 이번 국정조사를 사실상 유실시키려는 저의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국정조사에 합의해준 여당은 필경 사전에 정부측과 협의를 했을게 틀림없는데,그렇다면 실제 조사를 못할줄 알면서도 겉으로는 조사에 응한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의심을 면하기 어렵다.
법때문에 끝내 국정조사를 못한다면 국회는 먼저 법을 고치는 수 밖에 없다. 여당도 국정조사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국정조사를 실제 가능토록 할 법개정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령 이번처럼 의혹자금의 수표추적이 불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자금의혹을 내포한 다른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국회가 조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 된다.
대개 의혹사건이라면 돈문제가 포함되게 마련인데,그렇다면 국회의 국정조사권은 유명무실해지지 않겠는가. 국회로서는 이번 기회에 수표추적을 둘러싼 법의 상충을 해소할 입법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국정조사가 유야무야로 끝나서는 국회의 위신 추락은 물론 정부·여당에도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의혹이 있고 조사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조사는 않고 넘어간다면 의혹은 증폭되고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국정조사에 정부·여당측이 좀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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