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선거법의 첫 실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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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5일 실시된 전북 군산의 도의원 보궐선거는 전국적 관심사가 되기 어려운 한치방에 국한된 선거였지만 새로 입법한 통합선거법이 첫 적용된 그 실험적 성격 때문에 주목대상이었다. 보선결과는 일단 「합격」이라고 해도 좋을만하게 단 한건의 탈법·불법사례도 신고되거나 적발된 것이 없었다. 낙선자도 흔쾌히 선거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표면적인 양상만 보면 새 법의 정착과 새 법에 의한 선거혁명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율이 고작 33.7%였다는 점,선거지원을 위한 중앙당(야당) 간부들의 대거 방문,금품 또는 향응제공이 일부 있었다는 뒷말 등을 종합해보면 통합선거법의 정착에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 후보들은 엄격한 법에 따라 돈을 쓰지 않았고 발로 뛰는 선거운동만 했다고 한다. 선관위가 철저히 감시활동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감시·단속이 쉬운 한 지역선거가 아니라 수만명 후보와 운동원이 뛰는 전국선거도 이번 보선처럼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내년 6월로 예정된 4개 지방선거는 기초의원·광역의원,시장·군수·시·도지사 등 뽑아야 할 사람만도 5천명이 넘고 후보자와 운동원은 수만명,수십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대규모 선거에서 당국이 아무리 철저한 감시·단속을 한다 하더라도 군산보선처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후보와 운동원의 의식이 중요한데 최근 일부 시장·지사나 구청장의 사전선거운동 시비만 보더라도 과연 내년 선거에서 그런 공명의지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관위가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선물제공을 명백한 위법이라고는 단정하지 않았지만 출마가 예상되는 단체장들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이런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엄하게 규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텐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당들의 체질도 문제다. 이번에도 일개 지역선거에 야당 간부들이 몰려갔듯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정당들의 생리는 변하지 않고 있다. 역대 모든 선거의 과열이 중앙당에 의해 조성됐음을 기억할 때 선거가 있을 내년 6월까지 이런 정당들의 체질이 바뀔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통합선거법이 첫 적용된 군산 보선이 일단 성공작이었음에 안도하면서도 이번 결과만으로 선거문화의 진전을 낙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관위가 벌써부터 공명선거관리를 위한 자체준비와 필요한 인력확보에 들어가고 정부 역시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군산에서는 미처 드러나지 않은 공명을 깰 요소들은 도처에 잠복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개혁법만 통과시켰다고 마음놓고 있을게 아니라 실제 깨끗한 선거를 치를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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