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서 채점까지 한곳서이뤄지게/「독립센터」필요(국립교육평가원: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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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하:「문제은행」엔 문제없나/농촌 폐교건물 쓰면 예산도 절감/전담 요원 5백여명 확보가 문제/일,말레이시아선 교도소·고성사용도
대입학력고사의 「보안」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영국의 고성을 빌려 출제·인쇄한뒤 시험직전 문제지를 전세기로 공수해온다. 80년대중반 출제본부내 쓰레기통에 버려진 타이프라이터의 카본테이프를 통해 문제지전문이 유출된 이후 취해진 보안조치다. 일본에서는 한때 교도소내에서 문제를 출제·인쇄하기도 했다.
정답유출로 권위와 공신력이 땅에 떨어진 국가시험의 출제·관리­.
교육계에서는 『문제의 질과 보안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독립된 시설확보와 「문제은행」식 출제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출제 및 관리는 호텔방에서 단기간에 벼락치기로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만아니라 철저한 보안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와 완전격리된 상태에서 출제와 인쇄를 비롯해 채점까지의 전과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국가시험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이용원보통교육국장(전평가원고사관리부장)은 『보안을 위해서는 이동과정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독립된 시설에서 전산·출제·인쇄·채점이 이뤄질 경우 보안뿐만아니라 경비·능률면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현재처럼 평가원은 강북에,출제본부는 강남의 호텔에,인쇄본부는 성남의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서는 원활한 업무협조와 완벽한 보안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측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독립건물을 외면하고 있지만 대입학력고사의 호텔방 출제관리 한차례에 드는 예산이 9억원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주장한 이 국장은 『농촌지역의 폐교부지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와함께 문제은행식 출제만이 문제의 질 제고와 보안상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길이라는게 중론이다.
평가원의 이해영사회교과실장은 『예를들어 국사과목의 경우 좋은 문제를 5천개정도 확보해 이중 20문항을 선택한다면 설령 전체문제가 유출된다해도 모두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며,만일 외웠다면 그것은 실력』이라고 말했다. 문제은행식은 장기간에 걸쳐 문항 하나하나가 검증되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아 평가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으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통합교과적이어서 세부과목별로 출제하는 종래방식과 달라 단기간에 질좋은 문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평가원의 자체분석이다. 그러나 문제은행식에도 문제는 있다.
이같은 문제은행식을 위해서는 현행처럼 그때그때 출제교수를 위촉하거나 60여명에 불과한 출제관리요원으로는 안되며,기구개편과 함께 최소 4백∼5백여명의 출제전담요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미국의 대학진학적성검사(STA)를 주관하는 교육평가기구(ETS)는 1천2백여명의 출제전담교수요원과 1천3백여명의 관리·지원요원이 상주하고 있으며,1개의 문항을 10개월에 걸쳐 교육목표와 난이도 및 제반 평가요소 등을 검토한뒤 문제은행(ITEMPOOL)에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1개의 출제세트에 20만달러(약 1억6천만원)로 우리나라 입시출제에 드는 5억∼9억원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눈앞에 두고있는 평가원측은 단기적으로 ▲출제본부입소당일 관리위원 위촉 ▲기획·보안요원 등 입소후 임무부여 ▲전화 등 모든 통신수단 폐쇄 ▲외부연락시 문서를 통한 전령이용 등 보안책을 서둘러 마련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보안책」은 관계자들이 긍지와 양심을 굽힐 경우 모래성과 같다는 것이 평가원측의 솔직한 고백이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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