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시민의 자기규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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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유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속박이나 규제도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잃어버렸던 자유를 되찾은 경우 그것을 만끽하려는 욕구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청와대주변과 인왕산개방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좋은 보기다. 수십년간 금역이 돼왔던 곳이 개방되자 휴일에는 물론 평일에도 호기심에 가득찬 시민들과 차량들이 몰려 관광지나 시장판처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도 청와대주변과 인왕산의 개방은 잘한 일이다. 비단 이들 금역의 개방뿐 아니라 새 정부가 택하고 있는 각종 규제의 해제와 자율의 시책도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시대와 상황이 변하고 국민의 욕구도 달라진만큼 자유는 확대되어야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편의적 규제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앞 시위 등 청와대 주변과 인왕산에서 빚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눈살찌푸려지는 행태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유와 자율에는 그에 걸맞는 책임과 규율이 뒤따라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그것을 억압됐던 욕구의 폭발과 호기심에서 나온 일시적·초기적 현상으로 보고 싶다. 혹시라도 정부당국자 가운데 역시 안되겠구나 하고 옛날의 규제에 다시 유혹을 느낀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자유와 자율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나갈마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하는건 당국자들의 이성이나 역사의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의 성숙한 책임의식과 자기규제 노력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행태가 계속되고 확산돼 부작용이 커진다면 타율적인 규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그런 결과를 우리들 스스로가 불러들여서야 되겠는가. 시민들의 자숙·자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당국도 이런 사태에 책임을 느끼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행정의 잘못이나 무신경은 과연 없는 것인가. 시민의 방종과 무절제만 나무랄 게 아니라 자율이 방종과 무절제로 변질되지 않게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행정의 기술이다. 예를 들어 쓰레기와 방뇨문제는 휴지통과 화장실 시설이 부족한데도 원인이 있다. 청와대 주변의 교통체증문제는 주차를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부처별로 규제를 무더기로 풀고 있는데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사전에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시일이 가고 당국이 세심한 배려를 하면 모처럼의 자유와 자율을 과거로 되돌리지 않을 길은 있다고 본다.
시민의 책임의식과 당국 행정기술의 2인3각만이 자유와 자율을 성숙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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