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의 바람직한 위상(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문민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안기부·기무사 등 정보기관의 개혁·개선방안이 산발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들 기관이 과거 본연의 임무보다는 정권의 도구로서 권력남용·정치사찰 및 공작,인권탄압 등을 자행한 강압정권의 상징적 존재였던 점을 생각하면 문민정부의 1차적 개혁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 기관은 대선전에 이미 스스로 탈정치와 새로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천명한 바 있지만 그후에도 부산기관장 회식사건에 안기부지부장이 참석했고 이번 대입부정사건에도 안기부직원의 개입이 밝혀져 거듭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따라서 새정부 출범후 빠른 시기에 진정한 민주화시대에 걸맞는 이들 기관의 제도적·법적 개혁과 운영개선에 관한 종합방안이 마련,실시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새정부 진영에서 구상하는 안기부의 개편방향을 보면 우선 현재 부총리급으로 돼있는 안기부장을 장관급으로 하고 6명이나 되는 차관급도 절반으로 줄여 전반적으로 안기부의 위상을 격하시킬 것이라고 한다. 또 정치사찰 등 국내정치에 개입할 소지가 있는 기구를 축소·폐지하고 이른바 조정관이란 이름으로 주요 공·사기관을 출입하는 것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안기부의 수사권축소 움직임이다. 안기부의 수사권이 그동안 정치사찰·인권탄압·권력남용 등의 잡음을 빚었던 것인데 새정부 진영에서는 이런 안기부의 수사권을 축소해 정보수집·내사까지만 허용하고 정식 입건·수사·송치는 경찰·검찰에 넘기자는 구상이다. 야당은 이미 안기부의 수사권을 폐지키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우리는 여야에서 나오고 있는 이런 전향적 개편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빠른 시일안에 종합적인 개혁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사실은 안기부 역시 과거 불행한 정치의 피해자다. 나쁜 정치의 도구로 이용됨으로써 욕먹고 증오받는 검은 이미지를 뒤집어 쓴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정보기관의 존재는 어느 나라나 필요로 하고 그 기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익을 지키고 증진하는데 있어 신속한 정보수집과 그에 따른 발빠른 대처야말로 필수적이다.
우리사회에서도 북한과의 대결적 측면이 상존하는데 대응해야 하는 불가피한 정보업무와 오늘날 치열한 국제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산업·기술정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누구도 이론이 없다. 문민정부에서 새로 태어날 안기부가 명예를 회복하고 전심전력을 다할 분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기관을 정치에 이용않겠다는 새정부의 확고한 결의와 잘못된 기득권에 집착않는 안기부의 자세전환으로 새로운 안기부가 태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