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평' '근' 쓰면 50만원 과태료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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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 계량법에 따르면 면적의 단위로 ‘평’을 쓰거나 무게의 단위로 ‘돈’ ‘근’ 등을 쓰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내게 된다. 과학적 측정이나 표준화 작업 등을 위해 단위를 통일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또 국제적으로 미터법이 대세이므로 미터법으로의 통일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민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얽혀 있는 일은 공청회 개최 등 충분한 홍보가 시행된 뒤 실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홍보를 위해 한 일은 4개월가량의 라디오 광고와 관련 자료를 학교 및 행정기관에 전달한 것이 전부다. 공청회 개최도 없었고, 관련 업체 등에 대한 별도 홍보도 없었다. 정권 홍보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어온 이 정부가 정작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할 일에는 홍보에 무관심한 셈이다.

 미터법 사용의 의무화는 이미 1961년 계량법의 제정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가마니·말 등으로 계량되던 곡물의 단위는 이제 대부분 ㎏으로 통일됐다. 또 대형 마트의 출현과 함께 과일이나 육류도 ㎏의 사용이 보편화됐다. 그러나 주택이나 토지의 넓이는 여전히 평의 사용이 일반적이고, 금·은 등 귀금속도 돈이라는 재래 단위가 쓰이고 있다. 결국 국민이 경우에 따라 편한 단위를 선택해 사용하는 셈이다. 건축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평이나 자 등의 단위는 인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인간 척도인 때문으로 풀이한다. 그만큼 도량형이란 사회·문화적으로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관습이기 때문에 단순히 통계나 과학으로만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터법을 의무화하고서도 벌금을 부과하지 않았던 것은 국민의 불편이나 혼란을 고려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무지한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불편 정도는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듯이 나오고 있다. 지금 같이 무조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독재 정권에서나 할 일이다. 관습은 서서히 고쳐질 수밖에 없다. 일정한 과도기와 계몽 기간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