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문제 해결된 것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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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곡수매동의안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의 공방이 조정단계로 들어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3당은 오직 농민표만을 의식해 경쟁적으로 수매가와 수매량을 올려야 한다는 생색내기에만 기울어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하는데는 소홀했다. 미국이나 유럽공동체가 우리나라의 쌀시장 개방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화될수록 우리 정당들은 세계경제전쟁이라는 큰 틀안에서 농업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지원하느냐는 중장기 비전 제시에 힘을 쏟았어야 옳았다.
3당은 당초 수매가 10∼15% 인상과 1천1백만섬이상 매입주장에서 결국 양곡유통위원회가 제시한 수준에 가까운 「9백60만섬 수매,7% 인상」이라는 단일안에 하향 접근했다. 정부는 전략적으로 매우 낮은 선의 수매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각당의 안을 유통위의 건의안에까지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올해 추곡수매동의안의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농정의 골간을 이루는 수매정책이 계속 이런 식으로 다뤄져서는 농민이나 도시민 어느 쪽에도,나아가서는 국가경제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농민들은 수매가 인상률 보다는 수매량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방 유세를 하고 있는 각당들에 몰리는 농촌의 민원이 대부분 그러했다. 산지 쌀값이 너무 낮아서 이대로는 더 이상 농사짓기가 힘들기 때문에 농민들이 정부수매에만 매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의 유통기능 회복에 손을 쓸 생각은 별로 않고 있다. 농민을 위한 농정을 강조하고 있는 각 정당도 쌀의 수매가와 방출가의 격차를 줄이고 시장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농촌소득 증대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정당은 이중곡가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 다음 이에 대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수매정책을 계속 물가안정 차원에서만 다룰 생각인가. 그래서는 쌀 생산량의 약 70%가 수매가 보다 훨신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데서 빚어지는 농정의 불안은 앞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쌀시장 개방압력을 버텨낼 자신이 있는가. 각 정당들도 무작정 수매값을 올리고 수매량을 늘리는게 좋다는 「허풍선정책」으로 집권이후 개방압력의 외풍을 맞받아 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와 각당이 근본문제에 손을 대지 않은채 쌀 수매정책을 다음 정권에 넘기는 것은 모두가 뜨거운 감자는 쥐지 않으려는 심산에서다. 국민들은 계속 비싼 쌀을 먹으면서 개선전망도 없는 엄청난 양곡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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