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방일」좋긴한데 시기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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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소식에 접한 국민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또 가나」와 「왜 갈까」로 집약된다. 이처럼 국민과 여론은 노 대통령의 느닷없는 일본방문계획에 대해 의외라는 느낌과 의아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부정적 반응의 첫째 이유는 노 대통령의 외국여행이 그동안 잦았기 때문이다. 11월중 방일이 이뤄지면 노 대통령의 5년 임기중 열한번째의 외국나들이가 된다. 그중 꼭 정상이 나서야만 했던 경우가 과연 몇차례였을까. 특별한 외교적 현안이 있기 어려운 유엔을 노 대통령은 임기중 세차례나 방문했다.
대통령의 외국여행에는 비용도 많이 든다. 경제기획원의 국감자료에 의하면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10차례 외국방문으로 국가예산에서 6백50억원을 썼다.
다행히 이번 방일의 경우는 비공식 실무방문으로 하여 전세기를 따로 내지 않고 전용기를 이용하며,수행원도 극소수만 대동하고 당일로 다녀온다는 계획이다. 이 방식은 번거로움을 피하고 비용도 덜 든다는 점에서 건전하고 합리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
물론 꼭 필요하다면 대통령의 외국여행에서 횟수나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처럼 여러차례의 외국방문이 모두 꼭 대통령이 나서야만 될 일이었느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의 방일에 대해서도 방문목적을 선명하게 밝혀 국민들의 의아심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일반국민이 보기에는 지금 한일간에 정상회담을 가져야 할 뚜렷한 현안문제가 떠오르지 않는게 사실이다.
김종휘외교안보수석은 이번 방일이 양국간의 현안타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소원해진 양국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가토관방장관도 「정상끼리 한일교류를 깊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국민들로선 이 정도의 일로 대통령이 직접 일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긴 어렵다.
다음은 방일의 시기문제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선거와 정부교체라는 중대한 국가적인 정치행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임기말의 대통령은 웬만한 일을 차기정부에 맡기고 엄정한 선거관리와 하던 일의 마무리에 힘을 쏟는 것이 상례다. 일본으로서도 지금은 외국정상을 맞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다. 가네마루의 퇴진파동으로 일본 정계와 집권 자민당 및 정부가 안정돼 있지 못하다.
한가지 방일의 필요성을 든다면 우방국가인 두나라가 변화된 주변정세에 맞춰 협력방안을 찾는 것이다. 예상되는 미국의 정권교체,옐친의 방일취소와 한국방문 등은 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이 이왕 일본을 방문한다면 이같은 국제사회에서의 협력방안과 양국간 무역역조,정신대문제 등에 진전된 합의를 가져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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