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까지 물리는 후보 초청(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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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는 최근전에 못보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이익단체·친목회 등이 다투어 대통령후보들을 초청해 간담회·토론회를 열고,후보들은 밀려드는 초청에 다 응할 수가 없어 쩔쩔 맨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순수하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통령후보들을 시민이 직접 만나 국정에 관한 견해를 들어보고 인물됨됨이를 관찰하며,자기네 생활분야의 사정을 후보들에게 주지시키는 등 여러모로 유익한 행사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기에 이런 현상도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사가 본래의 순수한 취지와는 달리 표의 압력으로 지원공약을 얻어내는 저질로비의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재정지원을 강요하는 폐단을 일으키는데 문제가 있다. 실상 후보들은 각종 행사에 참석해 이른바 금일봉을 빠짐없이 내놓고 초청자들을 기쁘게 하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남발하고 있다.
시민과 후보의 만남이 이렇듯 돈봉투와 선심공약의 무대가 된다면 그런 행사는 선거의 조기과열과 금권선거운동만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가령 2일부터 경주조선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정치학회의 세미나를 보자. 학회측은 3명의 후보를 초청하면서 수천만원대의 행사경비내용을 초청장에 첨부했다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영향력이 큰 정치학자들의 초청을 수락한 후보들은 각기 5백만원짜리 점심,4백만원짜리 저녁을 내기로 했다는가 하면 정주영후보는 현대그룹에 행사의 스폰서를 맡겼다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교수들이 다가오는 대선과 관련한 세미나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후보들을 그 자리에 직접 청해 경륜과 비전을 들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양식있는 교수들이 미리 경비내용은 왜 알렸으며 식사제공·비용지원은 왜 주선받았을까.
우리는 이 세미나의 토론내용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보겠지만 대접을 잘 받은 후에는 할만한 비판도,지적도 하기 어려워진다는 상식만 지적하고 싶다. 정치인들의 호텔정치도 과소비라는 지적을 받는터에 교수들의 학술행사가 관광지의 고급호텔에서 열린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세미나 말고도 일부 교수들이 모후보와 관련이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부부동반 산업시찰을 초청받았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이처럼 후보들을 초청하는 측도 석연치 않지만 후보들 자신에도 문제는 많다고 본다. 지나치게 표를 의식매 사람만 모이면 쫓아다닌다는 인상을 후보들이 준 것은 아닌가. 뒷감당을 어떻게 할는지 듣기좋은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넉달전 공천때엔 하지도 않은 대담한 여성기용 공약 같은 것을 보면 넉달새 그렇게 변했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좀더 지도자다운 무게와 체통을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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