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과 직업윤리/정규웅(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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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한 원로 코미디언이 TV 토크쇼에 출연해 TV가 막 등장한 60년대초 자신에 대한 인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참 굉장했어요. 길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사람들이 마냥 줄줄 따라 다녔지요. 온몸을 떡 주무르듯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밥은 먹느냐,화장실도 가느냐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데는 기가 차더군요.』
○잇단 사건·사고에 눈살
이것이 연예인에 대한 대중적 인기의 한 양상이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양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한 TV드라마에서 형제로 출연해 깜찍한 연기를 보였던 두 소년은 또다른 TV토크쇼에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이렇게 털어놨다. 먼저 중학교 1학년짜리 소년의 이야기.
『저를 알아보기만 하면 무조건 머리부터 세게 쥐어박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분들은 제 손을 꼭 잡고 놓아 주지를 않는데 너무 너무 아파요.』
뒤이어 국민학교 2학년짜리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시간에까지 교실로 찾아와 이것 저것 묻곤 해서 짜증나고 귀찮아요. 가만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도무지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TV연기자를 탤런트라고 하듯이 연예인들은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웃길 수도 있고 울릴 수도 있다. 대중들이 연예인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네들의 일거일동은 항상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똑같은 일이라도 연예인들의 행위가 특히 돋보이는 것도 그 까닭이다.
최근 잇따라 뉴스로 등장하고 있는 연예인관련 사건들도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수로운 것들이 아니다. 한 TV연기자는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무릎수술을 받았다가 들통이 나 구속됐고,한 연기자는 기자를 폭행해 물의를 빚었으며,며칠새 두명의 연기자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 구속됐다. 그런가 하면 한 코미디언은 대중음식점 허가를 받은뒤 접대부를 두고 심야 변태영업을 하다 법망에 걸려 들었고,한 탤런트는 위락시설을 운영하면서 임야를 주차장으로 불법 사용하는 등 잘못을 저질러 검찰에 고발됐다. 모두가 유명 인기 연예인들이다.
매일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크고 작은 온갖 사건들에 비할때 극히 사소한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석에서 만난 한 연예인은 이렇게 불평했다.
○특수층 착각해선 안돼
『연예인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사소한 사건을 일일이 들춰내 매도하는 신문들이 야속하다. 보통시민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때는 기사화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예가 허다한데 유독 연예인들의 잘못은 별것 아니라도 얼굴사진까지 내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이 말에도 물론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그래서 그들의 일거일동이 늘 관심의 표적이 되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그 자체가 대중의 구미를 돋워야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생활의 작은 부분조차도 충분히 뉴스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잊은듯 하다.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대중의 박수갈채가 자신들을 「특수층」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인 것처럼 착각한 탓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잘못이면 그들에 대한 대중적 인기로 덮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기는 할망정 특수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대통령에 올랐던 레이건이나 국회에 진출한 우리나라의 영화배우·코미디언·탤런트 등 대중예술인들이 그 배후에 연예인 시절의 강력한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아는 연예인이라야 진정한 연예인일 수 있다. 그것이 연예인의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한 중견탤런트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인기 두려워해야
『대중의 인기란 덧없고 냉혹하다. 인기가 시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대중의 뇌리속에서 사라진다. 인기가 상승세라고 좋아할 것도,하락세라고 서글퍼할 것도 없다. 인기를 의식하면 할수록 그 연예인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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