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사 밥그릇 위해 과목 결정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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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특정 과목 교사.단체들이 2009년부터 시행될 새 교육과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고 한다. 일부 정부기관.국회의원까지 가세해 교육인적자원부에 로비.압력을 넣고 있다니, 공교육의 기본 틀을 정하는 교육과정이 밥그릇 싸움터가 된 느낌이다. 오죽했으면 교육부총리가 "교육과정 개정은 각계 이해가 얽힌 권력투쟁"이라고 털어놓았겠는가.

교육부는 며칠 전 공청회에서 고 2, 3학년의 필수과목 수를 늘리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높자 교육부총리가 "가능한 한 현행 체계를 유지하겠다"고 물러섰다. 그럼에도 교사나 단체들은 자신의 담당 과목을 꼭 가르쳐야 한다, 수업시간을 늘리라며 교육부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과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이미 우리 고교생들은 과중한 수업에 짓눌려 있다. 필수과목 수는 미국.영국의 두 배 이상이고, 연간 수업시간은 일본의 1.5배다. 그래서 교육부도 필수과목 수를 줄이겠다고 장담해 왔다. 이런 마당에 필수과목 수를 늘리면 학생의 내신 부담은 커지고, 새 과목의 사교육이 번창할 것은 뻔하다. 이를 잘 알 텐데도 '권력다툼'을 벌이니, 지나친 이기주의라고 비판받아도 마땅하다.

비인기 과목 교사들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필요치 않은 과목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의 교육목표와 방향이 무엇이냐다. 그 우선순위에 따라 과목이 정해져야 한다. 교사들의 밥그릇 때문에 우리 교육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교육부는 과감하게 필수과목을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교육 수요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돼야 한다. 그것이 과중한 수업부담과 사교육을 줄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화.다양화 시대에 맞는 공교육으로 가는 길이다. 시대변화에 맞춰 교사 양성 시스템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 교사를 위한 과목 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