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인기 무대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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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7일 오후6시 문예 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연극의 해」개막 축제는 한국 신극사상 80년만의 첫 생일 잔치인 셈. 행사장을 가득 메운 연극인들을 온통 기쁨과 감격의 분위기로 흠뻑 젖어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극외 해」는 일반의 무관심과 가난 속에서 순수 공연 예술을 지켜온 연극인들에게 처음으로 관에서 전폭 지원을 약속한 원년이며, 개막 축전은 이 같은 지원 아래 마음껏 펼치고 다듬어온 한해 연극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연극인 전체의 잔치였다.
행사 시작전부터 문예 회관 주위는 빨간 코의 피에로, 초록색 모자를 쓴 피터팬 요정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높고 맑은 목소리로 잔치 분위기를 돋웠다.
연극인들의 흥을 더욱 드높인 것은 평소 연극계로서는 모시기(?)힘들었던 거물 인사들이 자신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물론이고 노재봉 국무총리·박철언 체육 청소년부 장관에 이어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김대중 평민당 총재도 행사장을 찾아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축제가 시작될 무렵 대극장 7백석이 모자라 많은 연극인들은 객석 중간 빈자리와 통로를 가득 메우고 무대로 시선을 모았다.
개막 팡파르와 함께 실내가 조용해지자 최고령 배우인 고설봉씨가 50년전 신파극 『육혈포 강도』공연 당시의 일본 순사 복장으로 나와 국립 극단 배우들과의 짤막한 공연 재현 뒤 본 행사가 시작됐다.
공동 진행자인 원로 장민호·백성희 커플과 중견 권성덕·계숙 커플이 무대 좌우에 나타나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80년 연극사에 처음입니다.』
『연극은 살아있는 예술입니다·예술인의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축 인사에 이어진 각계의 축하 메시지는 연극인들의 기대와 자존심을 한껏 부풀게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 문화를 꽃 피운 연극인들의 용기와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대통령 메시지),『연극인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힘 있는 한 연극 예술 창달에 노력하겠습니다.』 (노 총리),『정부 지원은 잘 한일 입니다. 문화부 예산·연극 지원 예산을 더욱 늘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김대중 총재),『연극을 생명으로 알고 모든 것 바쳐온 연극인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박철언 장관) 등등.
『이것이 연극입니다』란 MC 멘트에 이어 무대의 막이 오르고 대표작 하이라이트 공연이 시작됐다.
15편의 유명 공연이 10분 정도씩 계속 공연되면서 왕년의 인기배우들이 추억의 무대를 재현해 나갔다.
TV 연기에 더 바빠 연극 무대를 소홀히 했던 박인환·최주봉씨도, 사업가로 변신한 김성옥씨도, 이제는 칠순이 되어버린「영원한·햄릿」김동원씨도 과거의 자신들로 되돌아 왔다
3시간 넘게 계속된 축제이지만 시종일관 흥에 넘치는 화려한 연기로 극장안이 식을줄 몰랐다.
마침내 스티로폴 벽돌로 쌓은 듯한 무대의 막이 내렸다. 잠시 후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와르르」벽을 부수고 출연 배우 1백여명이 무대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오색지가 흩날리며 박수와 환성이 터졌다.
『너무나 많은 벽을 부수고 이 자리에 같이 모였습니다. 연극인 앞에서 모든 벽은 무너집니다.』(이어령 장관).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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