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종전 처리의 바른 방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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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쟁은 이라크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냉전체제 해체이후 새로운 평화질서를 모색하는 유동기를 틈타 국지적 패권을 추구하려던 군사모험주의의 당연한 패배다.
국제사회가 이라크에 대한 집단무력 응징에 나서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사담 후세인같은 모험주의자들에게 경종이 될 수 있다는데 이번 전쟁은 값진 교훈이 되고 있다. 또 유엔을 통해 다국적군 편성의 계기가 마련됨으로써 새로운 질서아래 국제평화유지기구로서 유엔역할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 것도 평가할만한 일이다.
이제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다국적군의 군사적 목표는 달성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이러한 군사적 승리를 어떻게 중동의 지역안정과 국제평화질서로 연결시키느냐는 점이다. 이는 당장 이번의 전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데서 출발점을 찾게될 문제다.
이번 전쟁은 진행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냉전의 종식은 국가간 심지어 동맹국간의 정치·경제적 경쟁을 끝내기는 커녕 그것을 더욱 첨예화시키는 추세를 보여 주었다. 종전방법에 관한 미소간의 신경제,전후 복구사업 지분문제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다국적군 참여국가들의 마찰,중동세력균형 유지에 대한 갈등 등 국가관계의 요인들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비록 다국적군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이번 전쟁을 미국이 주도했다는데서 앞으로 중동지역의 질서가 미국 의도대로 재현되리라는 분석은 당장에는 가장 현실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정황으로 보아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아래 당장 안정이 회복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아 그러한 구도가 계속 타당할 것이며 바람직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른다.
우선 소련이 그처럼 세력균형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달가워 할 것이냐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깊은 소련에 불만을 안겨주는 전후처리라면 모처럼의 냉전시대 이후 평화구도가 안정된 긴 안목의 것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그렇지 않아도 반목이 심한 중동지역에 뿌리깊은 반미 감정이 어떤 정치적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게 될지도 중요한 요인으로 남는다.
아울러 다원화되어가는 추세로 보아 서방동맹국은 물론 다른 제3의 국가들이 미국의 독주를 의념에 찬 시선으로 바라볼 것도 분명하다.
국제사회가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지지했던 것은 국제질서의 안정적인 재편을 위한 것이었다. 전후처리가 어느 특정국가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패권추구의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후 처리과정을 두고 이상의 갈등요소들이 적정하게 배려되지 못한다면 이번 전쟁은 또다른 분란과 불안의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이는 냉전후의 집단안보체계의 싹을 처음부터 잘라 버릴 위험도 있다.
이러한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승리한 다국적군의 주도가 아닌 유엔을 통한 전후처리가 바람직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라크에 대한 무력응징이 유엔결의에 바탕을 둔 것인 만큼 그 처리도 유엔을 통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해결방법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고 유지하는데 유엔의 역할과 기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냉전이후 시대를 향해 한차원 높은 국제질서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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