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했다, 목포 일반고서 의대 간 전략

  • 카드 발행 일시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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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출신의 고3 현역 신입생. 의대에선 도통 찾기 힘든 존재다. 실제로 올해 의대 정시 합격생 중 이들의 비중은 5.4%에 불과했다. 반면 수능을 2번 이상 본 ‘N수생’은 80%, 수도권 출신은 60%가 넘는다. 중앙대 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임민찬씨를 만난 건 그래서였다. 그는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일반고(영흥고)를 나와 한 번에 서울 소재 의대에 합격했다.

남들 하니까 덩달아 하는 건 안 됩니다. 그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낫죠.

박정민 디자이너

박정민 디자이너

비수도권 일반고 출신으로, 재수도 하지 않고 서울 소재 의대에 입학한 비결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는 “과학고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라고 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그리고 유리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의대 합격 고득점의 비밀』을 쓴 그는 지난 1월 『어머님, 의대생은 초등 6년을 이렇게 보냅니다』를 출간했다. 정보도, 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도 없는 지역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학군지에서 공부하지 않거나, 재수·삼수하지 않고도 의대 갈 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일 경기도 용인 새빛초 학부모 연수에서 강연을 한 그를 직접 만났다.

Intro. 목포 일반고 출신 현역 의대생
Part1. 전남과학고 대신 일반고 간 이유
Part2. 나만의 학습 치트키는 루틴
Part3. 선행 필수? 선행이 발목 잡더라

Part1. 과학고 대신 일반고 간 이유

대학 진학 후 가장 선명한 기억은 입학 동기들을 만났던 자리다. 형·누나가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시대인재 O기’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시대인재는 올해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재수종합학원이다. 교수가 본인이 나온 고등학교 출신 학생을 따로 불러 밥을 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특목·자사고, 서울 명문고였다. 의대 공부만으로도 여유가 없는 그가 시간을 쪼개 학습법에 관한 책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광역시 아닌 지역 출신 의대 친구는 거의 없다”며 “나처럼 공부하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졸업한 고교엔 지역 인재 전형으로 전남 지역 의대를 가거나 지역 균형 전형으로 서울대 의대를 간 경우는 있지만, 그 외 전형으로 서울 소재 의대에 진학한 건 임씨가 처음이었다.

목포 출신이긴 하지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의사나 교수 아닌가요?
어머니는 전업주부고, 아버지는 석상이나 비석·납골당 같은 걸 만드는 석재 사업을 하세요. 할아버지는 목포시청 공무원이셨고요. 쌍둥이 형은 저랑 같은 해 고려대에 진학해 지금 4학년이에요.
대학의 다른 동기들처럼 특목고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나요?
중학교 때도 공부를 곧잘 해서 전남과학고에 진학하려고 했었어요. 실제로 갈 수 있는 성적이었고요. 하지만 고민 끝에 가지 않았죠.
다들 특목고에 가고 싶어 하는데, 왜 가지 않았나요?
생각해 보니 수학이나 과학을 유달리 잘하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큰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과학고에 가면 그런 친구들이 많을 텐데 말이죠. ‘과연 거기서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봤는데, ‘그렇다’는 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반면 저는 영어나 국어까지 고르게 잘했어요. 특별히 뛰어난 과목도 없었지만, 특별히 처지는 과목도 없었죠. 과학고보다 일반고에서 더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셨어요.
특목고의 면학 분위기가 탐나진 않았나요?
분위기에 휩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지필평가가 있었는데, 6학년 중간고사·기말고사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그때 받았던 관심과 시선을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중학생 시절에도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잘할지 고민하면서 공부했어요. 차별화하고 싶었죠.
중학생이 차별화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공부를 했다니, 좀 놀랍네요.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있어요.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학습량은 늘고 내용은 어려웠죠.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하고요.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게 전보다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남들이 시험 준비 한 달 하면 저는 6주 하는 식으로, 다르게 하려고 했죠.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공부하는 스타일은 일반고에서도 잘할 것 같아요. 하지만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학생도 있어요.
만약 그런 학생이라면, 특목고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특목고를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에요. 자기에게 맞는 학교,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명문대, 의대 합격생 대부분이 특목고와 학군지 출신이라고 무작정 따라 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예상대로 고등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나요?
전교 1등으로 졸업했어요. 물론 쉽진 않았죠. 특히 내신 성적을 차별화하는 게 힘들었어요. 다들 열심히 하니까요. 저는 수행평가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썼어요. 읽기와 쓰기를 곧잘 했거든요. 수행평가에서 차별화하는 전략이 잘 맞았죠. 실제로 저랑 내신 성적이 같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수행평가 점수가 1점 높아서 등급이 갈린 적도 있어요.
의대에 지원할 때도 유리한 전형을 잘 골랐을 것 같아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에선 지역 인재 전형으로 전남대나 조선대 의대를 가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제 내신 성적이 좀 모자랐어요. 내신 성적으로는 전남 지역 군 단위 소재 고등학교 출신이 저보다 유리했죠. 수능으로 승부를 내기엔 특목·자사고나 서울 학군지 출신보다 부족했고요. 그래서 각 대학 전형을 꼼꼼히 살폈죠. 그러다 중앙대 의대 다빈치 전형을 찾아냈어요. 학업·탐구·통합역량과 발전 가능성, 인성을 20%씩 보는 전형이라서, 성적 외에도 중요하게 보는 요소들이 많았어요. 회장도 여러 번 하고, 의료 봉사도 꾸준히 했던 터라 제가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죠.
임민찬씨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남과학고 대신 고향 목포에 있는 일반고를 선택했다. "과학고에선 잘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일반고에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남보다 더 잘하려면, 차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공부했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임민찬씨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남과학고 대신 고향 목포에 있는 일반고를 선택했다. "과학고에선 잘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일반고에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남보다 더 잘하려면, 차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공부했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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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나만의 학습 치트키는 루틴

임민찬씨는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핵심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에 꾸준히 다녔지만, 매일 그날 공부할 분량을 플래너에 적어가며 스스로 공부한 기억이 더 많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 왔다는 인상이 또렷해졌다.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학습을 하던 똘똘한 학생 같아 보여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부모님이 특별히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신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학원이나 문제집도 제가 골라서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라는 걸 커서 알았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쓰신 거였어요.
무슨 얘긴가요?
어머니께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희 형제 학습에 신경을 쓰셨대요. 담임 선생님께서 ‘신경 써서 공부를 시키면 잘할 것 같다’고 하셨다더라고요. 하지만 공부를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꼭 필요한 거라도 결정 과정에서 늘 선택권을 주셨죠. 서점에 데려가서 문제집 두세 권을 추천해 주시고 같이 보면서 한 권을 고르게 하셨고, 학원도 두세 군데 함께 상담을 다녀온 뒤 직접 고르라고 하셨죠. 그래서 알아서 공부했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정작 선택지를 몇 개로 추려 주신 건 어머니였죠.
책에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군요?
전 초등 시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학습은 없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하면 좋지만, 안 해도 큰 문제 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건 필수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직접 선택해야 성적이 오를 때 성취감도 느낄 수 있거든요. 아이의 공부 정서를 길러주고 싶다면 학습에 관한 선택을 직접 하게 하세요.
그것 외에 초등 시기에 잡아두면 좋은 학습 습관은 없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습관이 두 개 있어요. 전 중학교 진학 이후 몸에 익힌 것들인데, 돌아간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거든요. 둘 다 결국 학습 루틴을 만드는 전략이에요.
어떤 전략인가요?
첫 번째는 학습 플래너를 쓰는 겁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10분간 다음 날 할 것들을 적어보는 거죠. 학원 가는 일정, 해야 할 공부 등요. 공부 계획을 적을 땐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아요. ‘수학 공부’라고 적기보다 ‘수학 문제집 2장 풀기’라고 쓰는 게 낫죠. 다음 날 그 계획을 달성하면 하나씩 지우고요. 그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플래너를 쓰면 공부하는 습관이 잡히겠네요.
여러 과목을 균형 있게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중학교만 가도 공부해야 할 과목이 크게 늘거든요. 플래너를 쓰면, 특정 과목에 쏠리지 않고 고르게 공부할 수 있어요. 시험 준비할 때 특히 좋죠.
학습 루틴을 만드는 두 번째 전략은 뭔가요?
일주일에 하루 ‘복습의 날’을 만드는 겁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건 12회 분량 드라마를 10분짜리 영상으로 보는 것과 같아요. 줄거리나 흐름을 넘어 세세한 것들까지 이해하고 기억하려면 반드시 복습해야 해요.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 매주 일요일엔 그 주에 배운 걸 복습했어요. 과목당 30분~1시간씩 할애해서요. 이 습관은 중·고등 6년 시절 내내 제 성적의 치트키였죠.
임민찬씨는 "초등 시기엔 학습 습관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학습에 관한 선택이나 결정을 직접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임민찬씨는 "초등 시기엔 학습 습관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학습에 관한 선택이나 결정을 직접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Part3. 선행 필수? 선행이 발목 잡더라

‘의대생’ 하면, 국어나 영어보단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이과생이 떠오른다. 임민찬씨에게 수학 공부법을 물은 것도 그래서다. 남다른 학습 노하우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은 강점 과목이기보다 불안한 과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씨는 “그래서 말해 주고 싶은 공부 노하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의대생이 수학이 불안한 과목이었다니, 의외네요.
중학교 2, 3학년 때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때 공부를 잘못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불안한 과목이 된 거죠.
어떻게 공부했길래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빼는 선행학습을 했거든요. 그것도 2년이나요. 고등학교 2학년이 배우는 수학 미·적분까지 공부했으니, 상당히 진도를 나갔죠. 그런데 정작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선행학습에 몰두했나요?
저도 알았어요. 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했죠.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기분에 취했던 것 같아요. 다들 “와, 미·적분을 해?” 하는 것도 좋았고, “나 미·적분해” 이렇게 말을 하는 것도 좋았고요.
2~3년 선행하는 게 정속(正速)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행학습이 일반적이에요.
선행학습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특히 특목·자사고 진학을 고려 중이라면 선행학습을 하는 걸 권해요.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저처럼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도만 나가는 식으로 공부하는 거죠.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결국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공부했어요. 정작 중학교 심화 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죠. 선행보다 심화 문제집을 풀면서 한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는 게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심화학습을 하는 노하우는 없나요?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개로 집에서 심화 문제집 한 권을 풀게 하세요. 하루에 2, 3문제 정도만 푸는 게 포인트입니다. 양이 많지 않아야 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한 권을 반드시 다 풀 필요도 없어요. 진도를 나가거나 할당량을 채우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요. 어려운 문제를 끙끙대며 풀면서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목표죠.
선행학습을 따라가고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선행을 하면 보통 개념서 한 권을 하고 다음 진도를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 정도로는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 개념서 한 권과 유형서 한 권, 총 2권을 풀 수 있을 정도는 해야 선행이 의미가 있어요.
초등 시절 수학 공부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뭔가요?
연산이요. 중·고등 수학 시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계산 실수거든요. 게다가 연산은 초등 시절 외엔 따로 연습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연산을 잘하더라도 연산 문제집을 꼭 풀었으면 좋겠어요.
임민찬씨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나가는 선행학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장본인"이라며 "무리한 선행학습보다 심화학습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임민찬씨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나가는 선행학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장본인"이라며 "무리한 선행학습보다 심화학습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임민찬씨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제법 잘했지만, 교육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 그가 초등 학습법에 관한 책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 과외를 하면서 중·고등학생을 직접 가르쳐 보니, 초등 시절 습관이 제대로 안 잡혀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관련 도서를 조사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몇 학년 때 반드시 뭘 해야 한다’는 식의 책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가 초등 학습법에 관한 책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유다.

초등 때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중요한 건 습관이죠. 이게 안 잡히면 중·고등 시절 내내 효율이 안 나와 고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