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통한으로 맞는 광복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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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시 해방의 날을 맞아 우리가 가장 통렬히 느끼는 감회는 45년전 그날의 감격이 통합된 민족의 힘으로 재기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다. 통합은커녕 45년이 지난 오늘까지 분열과 대립의 분단구조 속에서 축제가 되어야 할 이 날이 올해도 우울한 행사로 치르게 되었다.
우리의 남북분단은 구체적으로 이념대립과 체제대결로 구조화돼 왔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등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민족공동체의 가치체계와는 상관없었던 외래적 산물이다. 동서 냉전체제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타율적 굴레다. 밖에서 들어온 이들 이질적 요소들 때문에 우리는 지난 45년간 갈라져 싸우며 민족적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해 왔다.
전후 45년이 경과하는 동안 우리를 갈라놓은 이념과 체제는 정작 그 시원지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평화공존의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공산권 변혁이 이데올로기 종언의 과정이라면 미소 화해는 냉전체제의 해체과정이다.
중심부의 본류가 이처럼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판에 주변부의 아류인 한반도의 이념과 체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번 광복절을 전후해 추진되던 남북간의 인적 왕래와 판문점에서의 범민족대회가 무산된 것은 한반도가 아직도 분열과 대립의 냉전구조 속에 얼어붙어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오늘의 우리 사정은 서구열강이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으로 세계를 분할하던 19세기후반,바깥 사정에 눈을 감고 아무런 준비없이 내분만 일삼다가 결국 나라를 빼앗겼던 한말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주류는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자유와 개방의 깃발 아래 통합과 공동번영을 지향하고 있다. 이같은 탈이데올로기적 현실주의는 곧 신민족주의로 규정되고 있다.
통일과 번영을 민족적 과제로 안고 있는 우리는 여기서 두개의 모델을 주시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독일의 통일과 일본의 번영이다.
전후 우리와 유사한 분단의 운명을 겪어 온 독일은 경제통합과 국경개방을 끝내고 연내에 정치통합까지 마칠 계획이다. 독일통일은 이데올로기 종언과 냉전체제 해체의 직접적인 결과다.
해방당시 우리와 반대의 운명에 있었던 일본은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고 지금은 경제대국ㆍ기술 선진국이 되어 미국과 선두다툼을 벌이고있다. 일본의 번영은 정치의 민주화,경제의 고도성장,그리고 국민적 단결을 통해 이룩한 성과다.
지금 우리의 통일은 지연되고 번영은 둔화돼 있다. 탈이념ㆍ탈냉전의 세계적 조류를 외면한 채 남북대결은 계속되고 민족공동체의 통일번영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더 가치를 두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다.
아직도 우리가 얽매어 있는 냉전적 이념과 체제를 극복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 민족의 통합과 발전을 지향할 때 우리는 진정한 광복의 날,벅찬 해방의 축제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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