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국민 여망 저버린 '전작권 시기'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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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한국군 단독행사 시기가 확정됐다. 워싱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2009년 10월 15일부터 2012년 3월 15일 사이로 결정된 것이다. 최소한 북한 핵 위협이 사라지기 전 까지는 단독행사를 미뤄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의 요청을 노무현 정부는 결국 듣지 않았다. 북핵 국면의 전개 과정에서 국민이 겪게 될 심리적.경제적 불안을 감안하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개탄스럽다.

미국은 한미연합사를 통한 현 전작권 행사 체계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주한미군을 대북 억지를 위한 '붙박이'로만 활용하지는 않겠다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국군으로 이양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전략 보강 계획, 북한의 위협 수준을 고려해 상호 치밀하게 협의해 나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위시한 이 정권이 현 체계를 '자주권의 침해'라며 집요하게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자 미국도 정 그렇다면 하는 식으로 '2009년 이양' 카드를 꺼낸 것이다. 한국의 '2012년 이양 요청'도 전력 보강을 위한 시간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하고, 더 강하게 받아친 것이다. 2002년에 고조됐던 반미감정이 전작권 문제로 내년 대선에 재현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이런 한.미 간 정치적 갈등이 결국 이번의 이양 시기 확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작권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래식 무기로 한국군의 단독 행사 능력을 확보하게 하는 것도 지난한 과제다. 설사 할 수 있다 해도 안보를 가정(假定)에 입각해 추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북한 핵실험으로 한국의 안보 상황은 전혀 차원이 다른 위기 국면을 맞게 됐다. 정상적 관계라면 전작권 문제 또한 당연히 원점서 논의해야 할 만한 중대한 상황 변화다. 그럼에도 양국은 '오기'와 '희망'을 어정쩡하게 절충하면서까지 시기에 합의해 버린 것이다.

단독행사 시기 합의와 여기에 '2012년'이 포함된 것을 놓고 이 정권은 '자주'도 성취하고 국민적 불안도 해소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핵 의존도는 급상승했는데 무슨 자주인가. 특히 2012년에 가봐야 핵도 없는 마당에 무엇으로 국민의 염려를 덜어주겠다는 것인가. 억지력이 될 수 없는 첨단무기를 더 들여온다며 국민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될 것 아닌가. 전작권 단독 행사 문제는 외교안보 라인을 바꿔서라도 재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아니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재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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