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당 아직도 정신 못 차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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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SK 비자금 1백억원 유입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은 정말 실망스럽다. 한나라당은 '한푼도 안 받았다'고 발뺌하다가 사실이 드러나자 표적수사라고 항의하는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 아직도 구태정치 행태에 젖어 사건의 불법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듯한 한나라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번 사건은 최돈웅 의원 개인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당 지도부 지시에 따라 한국의 1백대 기업 명단을 가져다 놓고 재정담당자들이 회의를 거쳐 조직적으로 모금했다고 한다. 중앙당 후원회를 앞둔 적법한 행위였다면 누가 그것을 문제삼겠는가. SK의 1백억원은 명백한 불법 모금행위이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의원들이 집단으로 검찰청에 몰려가 항의한 데 이어 당대표가 검찰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표적수사'라고 압력을 넣었다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인가. 당 간부 몇명이 사법처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 설령 정치적 타협으로 검찰이 수사를 중단한다 해도 국민이 그것을 용서할 것으로 보는가.

정치부패 척결은 국민적 요구다. 천문학적 선거자금을 쏟아붓고, 그것이 비자금과 특혜로 이어져 경제를 왜곡하는 악순환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당시 모금 및 집행의 전모를 낱낱이 털어놓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이 정도다.

대선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이상수 의원도 대선 당시 1백대 기업을 돌며 모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 왜 야당의 대선자금만 파헤치느냐고 억울해하는 것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의 죄과부터 고백하고, 처벌을 자청한 이후에나 검찰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한나라당은 물타기로 국면을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말고 진실을 고백한 후 국민의 심판을 겸허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한 철저한 자기파괴를 앞세우지 않고는 부패구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