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측근 검사장' 녹취는 조작? 채널A 사건 진실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녹음파일 당사자에 대한 이 기자의 진술과 보고는 일관되지 않았다.”(채널A보고서)

“부실한 조사이며 사실관계 상당 부분이 틀렸다.”(이 기자 측)

채널A 진상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을 두고 진실공방이 일고 있다. 조사위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A검사장의 연루 가능성을 암시했다. 반면 이모 기자 측은 A검사장이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했음에도 조사위가 부정확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며 비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A검사장' 이름 어떻게 나왔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채널A 기자 이모씨와 성명 불상의 현직 검사를 협박죄로 고발한 사건과 관련, 채널A 사무실과 이씨 자택 등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채널A 기자 이모씨와 성명 불상의 현직 검사를 협박죄로 고발한 사건과 관련, 채널A 사무실과 이씨 자택 등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징역 14년 나온 사람이면 돈 준 사람들 다 불 수 있지 않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취재에 착수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2월 수감 중인 신라젠 전 대주주 이철(55)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양 측은 서로 원하는 바가 달랐다. 이철 대표 측 대리인으로 나온 지모씨는 검찰에 출입하는 이 기자가 검찰 고위관계자를 연결해주기를 요구했다. 여야 인사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줄다리기를 했다. 이 기자는 자신이 그 연결고리가 될 것처럼 행동하며 비위를 제보받길 원했다. 그러려면 검찰 고위 간부와 자신이 긴밀한 사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얘기를 나눠 보고 알려달라. 얘기가 될 것 같으면 서로, 우리도 수사팀에 그런 입장을 전달해 줄 수 있다." (3월 13일 녹취록)

“(검찰과) 한 배를 타는 건데…필요하면 내가 (대검찰청) 범정을 연결해 줄 수도 있어. …그걸 가지고 우리(검찰)랑 대화하고 싶다면 대화의 통로를 핵심적으로 연결해줄 수도 있는 거지."(3월 22일 녹취록)

3월, 이 기자는 지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증명할 녹취록을 가져왔다. 자신이 이른바 ‘검찰 고위관계자’와 통화를 했더니, 그가 이철 대표 측 요구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A검사장 목소리" vs "말투 흉내 내 꾸민 것"

여기서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린다. 지씨는 이 기자가 가져온 녹취록 주인이 윤석열 총장 최측근인 A검사장이라고 언론에 나와 주장했다. 자신이 직접 들은 음성이 A검사장의 목소리로 들렸고, 이 기자도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조사위는 이 기자가 후배 기자와의 통화에서 ‘A검사장’ 이름을 언급한 점도 보고서에 담았다.
“A검사장이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할 수가 있으니까 만나봐 그러는 거야…자기가 손을 써줄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만나보고 나를 막 팔아 이러면서(3월 10일 후배기자와의 녹취록)”

이 기자 측은 A검사장과 접촉하지도 않았으면서 지씨에게 일종의 ‘허세’를 부렸다는 입장이다. 지씨에게 보여준 녹취록 내용은 이 기자가 창작했으며, 음성 파일도 아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A검사장 말투를 흉내 내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기자를 변호하는 주진우 변호사는 “세상에 어느 검사가 자기 이름을 노골적으로 팔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증거인멸" vs "취재원 보호"

채널A는 지난 22일 '뉴스A' 클로징 멘트를 통해 기자의 부적절한 취재행위가 확인됐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면서도 녹음파일의 진위는 밝히지 않았다. 사진 채널A 방송 화면 캡처

채널A는 지난 22일 '뉴스A' 클로징 멘트를 통해 기자의 부적절한 취재행위가 확인됐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면서도 녹음파일의 진위는 밝히지 않았다. 사진 채널A 방송 화면 캡처

이 기자가 후배 기자에게 A검사장을 언급한 것 역시 일종의 ‘연막’이었다고 했다. 당시 통화에서 그가 A검사장을 흉내낸 음성파일 조작을 예고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내가 카카오로 (통화를 해서) 녹음이 안됐거든. 그 부분은 너한테 워딩만 줄테니까, 그걸 변조해가지고 한번만 들려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하든가.(3월 10일 후배기자와의 녹취록)”

A검사장 본인은 녹취록의 당사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채널A 의혹 보도 직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신라젠 수사 자체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런 대화를 하겠느냐”며 “이 기자와 그런 대화를 나눈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이 기자에게 불리한 정황이 여럿 담겼다. 먼저 이 기자는 문제가 불거지자 자신의 휴대전화 2대와 노트북을 포맷했다. A검사장이 정말 녹취록의 주인이 아니라면 굳이 파일을 삭제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온다. ‘증거 인멸’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주 변호사는 “취재원 보호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전자기기에 수많은 취재원의 정보가 누적돼 있어 제3자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섰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와 관련해 증거를 없애는 건 법적으로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진술 번복" vs "처음부터 A검사장 아니라 진술"

조사위에 따르면 이 기자는 녹취록 관련 진술을 여러 번 번복했다. 3월과 4월 초에는 음성 파일 주인이 다른 법조인(변호사)이라고 진술했다가, 다시 4월 6일 이후로는 A검사장이라고 진술했다. 이후 변호인을 선임한 5월 16일에는 녹취록 주인이 다른 법조인이라고 한 최초 진술이 맞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회사에 냈다.

이 기자 측 입장은 다르다. 애초에 이 기자가 회사에 했던 첫 진술은 ‘A검사장이 아니다’였고, 이후에도 이를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주 변호사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검찰 친분을 과장해서 특종을 하려고 한 이 사건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A검사장의 이름이 언급된 부분이 있었고,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 기자가 실제 당사자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웠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박 위협' 주는 내용인지도 따져야"

이 기자 측은 “조사위가 부실한 조사 내용을 굳이 추정된다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발표하고, 수사의 증거 자료로 쓰일 수 있는 녹취록 내용 등을 함부로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채널A가 자신들의 개입은 없었다며 선을 긋지만, 사건의 실체는 밝혀내지 못해 혼란만 가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위가 녹취록의 내용과 이 기자의 휴대전화 포맷 등 사실관계를 가감 없이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기자는 현직 검사와 공모해 이철 대표 측을 협박한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이 기자 측은 지씨와 각자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 한쪽이 일방적으로 협박하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지씨가 해당 녹음파일을 듣고 협박죄의 구성요건인 해악의 고지를 느낄 만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은 음성 파일의 실체 등을 밝혀내기 위해 포렌식 자료 분석 작업을 계속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