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정상회담 15일 러시아서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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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5일 개막하는 G8 회의의 대형 로고 뒤로 8개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이터=뉴시스]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15일(현지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과 북한 미사일 발사, 이란 핵 문제 등 국제 정세가 전에 없이 꼬인 상황에서 열리는 세계 열강 최고지도자들의 회의다. 러시아가 가입 후 처음으로 의장국을 맡은 회의이기도 하다. 지구촌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다.

◆ 의제 설정부터가 '난제'=회의를 주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내건 의제는 에너지 안보, 전염병 예방, 교육 세 가지다. 지구촌의 에너지 고갈, 개발도상국의 전염병 퇴치, 교육 환경 개선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 의제 뒤에는 풍부한 석유.천연가스를 이용해 다시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러시아의 야심이 숨어 있다.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특히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25%를 러시아에서 사들이는 유럽이 그렇다. 공급자인 러시아와 수요자인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란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어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3일 독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G8 회의에서) 함께 풀어야 할 문제가 두 가지가 있는데 북한과 이란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푸틴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북한이 협상을 중단하도록 부추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미.러 간의 논쟁도 심각하다. 부시와 푸틴은 회의 개막 하루 전인 14일 미리 만나 만찬을 함께했다. 그러나 부시는 만찬 전날인 13일까지 "러시아가 우리와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언론 자유와 같은 공통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푸틴은 "러시아 국내 문제에 끼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동 분쟁 문제를 놓고는 미국과 유럽 간에도 온도 차가 느껴진다. 미국은 이스라엘 편이다. 그러나 유럽 일각에선 이스라엘의 레바논 봉쇄 등 과잉 대응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생각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G8 회의를 주최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당시 주제였던 아프리카 지원 문제를 다시 끄집어낼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지구 온난화와 빈국 지원 문제 등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 러시아 부활 신호탄 될까=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푸틴이 이번 회의를 위해 쏟아부은 돈은 3억9800만 달러(약 3800억원)나 된다. 절반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데 썼고 나머지는 순수한 회의 준비에 사용했다.

러시아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국가 이미지를 크게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미국계 홍보회사 케첨과 홍보 계약을 한 것도 그래서다. 푸틴이 직접 방송에 나와 전 세계 네티즌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지난해 말 영어로 된 자국 홍보 방송을 시작한 데 이어 아랍어 방송도 검토 중이다.

러시아는 1998년 기존 G7의 새 회원국이 될 때만 해도 경제난 등으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 러시아의 콧대가 이렇게 높아진 것은 에너지 가격 폭등 때문이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는 지난달 말 국제 채권국 모임인 '파리 클럽'에 진 빚 213억 달러를 모두 갚아 버리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번 돈이 넘쳐난다는 뜻이다. 푸틴은 최근 "(유럽에 집중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선을 아시아로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석유.가스를 헐값에 넘기진 않겠다"며 목청을 높여 왔다.

실질적인 의제 설정이 쉽지 않은 데다 의장국인 러시아의 야심까지 끼어들면서 이번 회담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에 대해 "G8 정상회의 결과란 게 보통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그것도 고르고 고른 단어로 표현한 말 잔치에 그치곤 한다"고 보도했다.

김선하 기자

◆ G8(Group of Eight)=세계 경제 주요 7개국과 러시아 정상들의 회담. 8개국이 세계 경제의 65%를 차지한다. 석유 위기와 이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1975년 창설됐다. 그동안 통상과 경제 문제를 주로 다루어 왔지만 최근엔 의제를 환경.국제정치.안보로까지 넓히고 있다. 초기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영국.미국 6개국만 참석했다. 캐나다(76년)와 러시아(98년)가 추가로 참여하면서 G8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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