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간판 '평화가 경제다'…북한 도발에 당혹스런 정부ㆍ여당

중앙일보

입력

“평화가 경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강원도 고성 지역에 신설된 ‘DMZ 평화의 길’에 방문해 그곳에 비치된 소원 카드에 적은 글이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즐겨 쓰는 슬로건이자 여권의 간판격인 ‘참 명제’였다. 지난달 8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취임사에서도 등장했다. 김 장관은 남북관계 3대 추진 기조로 ‘평화가 경제다’, ‘분권과 협치’, ‘소통과 합의’를 내세웠다. 그는 “남북 관계의 변화로 인해 일상의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넓어질 수 있다”면서 “경제를 고리로 평화를 공고화하고, 평화를 바탕으로 다시 경제적 협력을 증진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6일 DMZ평화의 길을 방문해 배우 류준열씨 등과 함께 솟대를 설치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고성=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6일 DMZ평화의 길을 방문해 배우 류준열씨 등과 함께 솟대를 설치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고성=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정부·여당의 청사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 4일 북한의 도발 징후에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미사일’ ‘도발’ 등의 표현을 쓰지 않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평화가 경제다’라는 말도 함께 사라졌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 정권 들어 남북관계는 ‘말의 성찬’과 ‘쇼잉’만 넘쳐났다. 북한에 끌려다니면서도 ‘평화가 경제’라는 공허한 외침만 해댔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모욕당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제1야당만 탓하고 정작 북한 정권을 향한 비판에는 침묵했다”고 덧붙였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뉴스1]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뉴스1]

‘평화=경제’라는 민주당의 청사진은 국내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도 언제든 먹혔던 논리이기도 하다. 한국당은 경제 문제를 막연한 낙관론으로 풀어간다고 비판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때인 지난해엔 ‘평화는 경제’라는 문구를 민주당이 백드롭으로 사용했다. 추 전 대표는 “평화가 곧 경제고, 민생이고, 복지”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당은 “경제가 평화다”라는 논리로 맞섰다. “경제 위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민주당으로서는 진퇴양란의 상황이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추동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안 좋은 경제에도 불구하고 평화 모드, 남북 화해라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어서 정부 입장에선 (북한의 움직임을) 크게 부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당과의 대치 국면에서도 입지가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평화와 경제, 남북 화해 무드라는 성과를 축소할 순 없겠지만, (남북 관계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기에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해 9월 17일 국회에서 긴급 의총을 열고 '평화가 경제입니다' 결의문을 채택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해 9월 17일 국회에서 긴급 의총을 열고 '평화가 경제입니다' 결의문을 채택했다. 오종택 기자

이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을 때 통계로 드러난 현상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던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 증가 규모(5000명 증가)가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10년 1월(1만명 감소)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악이었다. 당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청와대는 현재 고용 부진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이른 시일 내에 정책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결국 3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민주당 관계자는 “남북이 경색 국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평화는 경제’라는 구호는 중요하다. 평화가 위기에 봉착했다면 그 위기를 타개해야 경제에도 기여하는 단계가 오는 것이다”라면서도 “다만 지금 상황에서 그 슬로건을 앞세우기엔 시의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ㆍ이우림 기자
s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