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막판의 괴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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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40기KT배왕위전'

<8강전 하이라이트>
○ .홍성지 5단 ● . 온소진 3단

실력이 있으면 잘 둔다. 그러나 이기려면 운이 따라줘야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한 뒤 훗날 그 장면을 되새겨보면 결국 '불운'이란 단어 하나로 집약된다. 불운이라. 승부사는 스스로에게 준엄해야 하며 어떤 억울함도 실력 탓으로 돌려야 하거늘 비겁하게 불운이라니…. 하지만 불운을 받아들이고 껄껄 웃는 것도 한 방식이다. 그런 프로들이 의외로 생명이 길다.

장면도(204~213)=형세는 여전히 흑이 우세하고 바둑은 평온한 가운데 거의 끝나간다. 차이가 제법 나는 바둑이라 온소진 3단은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다. 이때 홍성지 5단이 204로 이었다. 흑의 뒷공배를 메우며 한방에 보내버리는 수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들은 이런 수를 일러 '관을 짠다'고 말한다.

사실은 바둑이 크게 좋으니까 관을 짜거나 말거나 한 수 받아주면 된다. 수는 읽어볼 것도 없다. 맛이 고약한 데다 초읽기니까 한 수 받고 끝내면 된다. 그런데 이게 무슨 괴변인가. 온소진이 205, 207로 한두 집 더 벌려고 애를 쓰더니 (이때만 해도 208이 급해 아직 여유가 있다) 기어코 209로 딴 곳을 두고 말았다.

여기서 210이 터져나온다. 지옥 입구까지 갔던 홍성지 5단이 가슴 졸이며 노리던 한 수다. 211로 끊자 212. 순간 온소진은 숨이 턱 막힌다. 강한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자 넋이 나가고 식은땀이 난다. 213에 이었으나 흑은 이미 요절이 났다. 백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참고도=213 대신 흑1에 모는 수는 백2, 4가 있어 성립되지 않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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