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장으로 두뇌 자극했더니 기억력이 15% 이상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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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리미트리스’의 주인공 에디 모라가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먹은 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SF영화 ‘리미트리스’의 주인공 에디 모라가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먹은 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 김성신 박사 연구 

닐 버그 감독의 영화 ‘리미트리스’(2011)는 머리가 좋아지는 알약을 먹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글 한 편조차 제대로 못쓰는 무능한 작가가 알약을 복용하고 나서 보고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하고, 하루에 한 개의 외국어를 습득하며, 아무리 복잡한 수학공식이라도 순식간에 풀어내는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말 그대로 공상 같은 얘기지만, 21세기 과학자들은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영화에서는 알약을 먹지만, 현실에서는 자기장의 힘으로 두뇌를 자극해 기억력이 좋아지게 한다. 전문용어로 ‘경두개 자기자극’(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이라고 한다. ‘경두개’란 두개골 열지 않고 외부에서 뇌를 자극한다는 의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김성신 박사는 경두개 자기자극기와 자기공명 영상기법을 이용해 사람의 기억력을 높이고, 또 이 과정에서 자극이 뇌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냈다. 김 박사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온라인에 22일 게재됐다.

경두개 자기자극을 하면 연상기억이 15% 이상 좋아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경두개 자기자극을 하면 연상기억이 15% 이상 좋아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경두개 자기자극기가 세상에 나온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간은 뇌 자극을 통해 특정 기능을 무디게 만드는 방식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주로 쓰였다. 2014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같은 방법으로 계속 두뇌를 자극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결론을 얻긴 했지만 구체적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김 박사는 경두개 자기자극 실험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뇌의 활동을 시각화해 자기자극이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회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16명의 건강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일 20분, 5일 동안 머리 윗부분 중 왼쪽 측면 부분에 자기자극을 가했더니 사물의 위치나 연관된 이미지를 기억하는 ‘연상기억능력’이 15% 이상 좋아지는 결과를 확인했다.

경두개자기자극 실험.

경두개자기자극 실험.

김 박사는“추후 연구를 통해 경두개 자기자극으로 연상기억 외에 다른 기억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밝혀낼 계획”이라며 “당장은 조심스럽지만, 언젠가는 이런 방법을 통해 누구나 머리가 좋아지는 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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