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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식인의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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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래서인지 사회학자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우리 사회를 '죽은 지식인의 사회'라고 표현한 대목이 선뜻 눈에 든다. 전 교수는 지난주 펴낸 '우리 시대의 지식인을 말한다'(에코리브르)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병들고 삐뚤어진 모습'을 비판하면서 "죽은 지식인의 사회를 방치할 여유와 기회가 더 이상 없다"고 역설했다.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지식인이란 통상 자신이 확신하는 가치.이념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비판적.참여형 지식인이다. 그런 지식인들이 최근 몹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들어 부쩍 두드러진 뉴라이트.뉴레프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전 교수 역시 뉴라이트로 분류될 수 있다.

최근의 활발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죽은 지식인의 사회'라는 표현에 공감이 가는 것은 20여 년에 걸쳐 위축돼 온 우리 지식인 사회의 위상 때문이다. 현대사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했고, 또 그만큼 치열했던 시절은 1980년대라 할 수 있다. 절대다수의 지식인을 반체제.사회변혁 세력으로 결집한 계기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군부독재정권이라는 선명한 투쟁 대상이 있었고, 현실사회주의라는 분명한 대안도 있었다.

소설가 황석영씨의 말처럼 '가난하지만 우애 깊은 한 가족' 같았던 지식인 사회는 80년대 말 분열되기 시작했다. 현실정치 차원에서 보자면, 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 단일화 실패에서부터 금이 갔다.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 약속을 깨고 출마했을 때 이를 지지한 '비판적 지지파'지식인들이 김영삼 후보를 지지한 그룹과 갈라섰다. 곧이어 89년 베를린장벽 붕괴 등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진보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대안마저 사라졌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다시 갈렸다. 이 무렵 북한 사회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주사파가 확산된 것도 대안 상실의 공허감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정권하에서 확실히 잦아들었다. 많은 지식인이 직.간접적으로 권력에 참여했다.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에서 '봉사'하는 지식으로의 변신이 한동안 시대적 흐름을 이뤘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교수가 이름 붙인 '5월의 지식권력'이 대거 권력에 뛰어들었다. '5월의 지식권력'이란 5.18이 낳은 진보적 지식인 집단이다.

최근 지식인 집단의 움직임이 부산해진 것은, 노무현 정부와 5월의 지식권력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다. 특히 정권과 적절한 밀월 관계를 유지해 온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 '냉정한 반성과 건설적 비판'을 주창하는 그룹(뉴레프트)이 생겼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진보그룹의 대표적 지성인 최장집(고려대) 교수는 최근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면서 정당정치를 경시하는 노 대통령의 정치관을 '반(反)정치의 정치관'이라 비판한다.

수세적 입장이었던 우파 지식인 그룹의 적극적 움직임도 주목된다. 보수 지식인들이 자생적이고 광범한 조직화(뉴라이트 재단 등)에 나선 일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죽은 지식인의 사회'라는 외침은 지식인의 부활을 예고하는 마지막 경종으로 들린다. 지식인이 죽어선 안 된다.

오병상 문화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