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남 집값 잡겠다고 교육정책까지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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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와 여당이 강남의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고교 학군을 광역화하거나 강남 8학군을 공동학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강북 학생들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고교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집값이 잡힌다고 보는 모양이다. 이 정권은 소득이나 교육 양극화의 주범으로 강남을 몰아세워 왔다. 자립형 사립고 확대 유보, 실업고 특별전형 확대 등의 교육정책을 동원하더니 이제는 학군 조정 카드를 꺼내들 모양이다. 그동안 보유세 강화, 재건축 규제 등의 갖가지 규제를 해봐도 강남 집값이 안 잡히자 이제는 학군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2002년 재경부 차관 시절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특목고 확대 방안을 내놨다가 "부동산 대책에 왜 교육을 동원하느냐"고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8월에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학군 광역화 카드를 꺼냈다가 반발에 부닥쳤다.

다른 지역보다 강남의 교육 여건이 좋고 이 점이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학군 조정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되레 강북 거주자들이 강남으로 가면서 집값이나 전셋값을 더 올릴 수도 있다.

학군을 조정하면 통학 거리가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른 교통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점 때문에 주무관청인 서울시 교육청도 학군 조정에 부정적이다. 안 그래도 정치적 목적의 교육정책들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더 헷갈리게 할 뿐이다.

학군 조정에 대해 청와대.열린우리당.교육부.재경부 등 관련자들의 입장이 제각각이고 열린우리당 의원들 간에도 찬반이 엇갈린다. 열린우리당이 서울시 교육청과는 협의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학군을 조정하려면 심층적인 연구와 공청회 등이 전제돼야 한다. 학군 조정보다는 평준화 정책을 수정해 각자가 선택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부동산 잡겠다고 교육정책까지 흔들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