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평준화가 사교육비 부채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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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반고보다 특수목적고.자립형 사립고 재학생의 총교육비 부담이 훨씬 작다는 사실이 어제 본지에 의해 확인됐다. 특수목적고 등의 등록금은 일반고보다 비싸지만 사교육비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는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 아래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에 집착해 온 우리 교육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평준화 정책이 과열경쟁을 억제했다고는 하나 더 큰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나치게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규제하니까 학생의 학교 만족도가 낮아지고 공교육 경쟁력이 크게 약해졌다. 그러니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사교육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학부모에게는 큰 짐이 됐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사교육을 받고 학교에선 잠을 자는 기현상이 일반화된 지도 오래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우리 사교육비는 2000년 7조여원에서 2003년에는 13조여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특수목적고.자립형 사립고의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학생의 학교 만족도가 높고, 학교가 열심히 가르치니까 사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중산층 부모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학교를 보내고 싶어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교육 양극화'를 내세우며 학부모들의 요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수업료가 비싸다고 '귀족 학교'로 몰아 가기 때문이다. 평준화는 사교육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부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꼴이다.

학교교육이 짱짱해 과외받지 않아도 실력을 기를 수 있다면 누가 돈 내고 과외를 하겠는가. 그러니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만들어 실력과 관심에 따라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간 경쟁을 통해 학교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본지가 각계 전문가 50명에게 '사교육 감소를 위해 공교육에 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그렇다'(56%)가 '그렇치 않다'(38%)를 훨씬 웃돌았다. 정부는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무시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