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사생활 관련 특정인물 도청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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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대중 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과 가까운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국정원 전 간부 박모씨는 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국정원 도청 사건' 재판에서 "1999년 엄익준 당시 국정원 2차장이 6개월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해 특정 인물들을 감청하라고 지시했다"며 "당시 도청한 내용에는 놀랄만한 것도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씨는 놀랄만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전 종합운영과장 김모씨는 "전직 국정원장들이 도청 관행을 잘 알았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 "천용택 전 원장이 재직 시절인 1999년 감청 부서인 과학보안국 산하 R-2(유선중계통신망 감청 장비) 수집팀을 순시차 방문, 도청 통화 내용을 직접 들어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근무 당시 국정원 도청 실태를 기억할 수 있느냐"는 검찰 질문에 "정치인.언론인 등 주요 인사의 전화번호를 하루에 2~3명씩 R-2에 입력했다"며 "천용택씨가 원장으로 있던 시절 가장 많은 전화번호가 이 장비에 입력됐다"고 답했다.

김씨는 이어 "임동원.신건 전 원장도 재직 당시 R-2 사용 실태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2002년 한나라당의 국정원 도청 문건 폭로로 내부감찰을 받을 때도 매우 형식적으로 감찰조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

그는 "도청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신건 변호사 사무실의 한 변호사가 '검찰 조사에서 도청 사실을 무턱대고 인정하면 처벌받게 된다'며 무료 법률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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