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일 밤 10시께 국회의장실을 나서면서 "내일이라도 (내년 예산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의장실을 빠져나가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지금은 굉장히 피곤하지만 (야당 원내대표들과) 전화 통화라도 해 보려 한다"고 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너무 피곤하다"며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취재진에 알렸다.
공무원 증원 놓고 민주당 1만명 고수 #한국당,국민의당 "국민 혈세 낭비" 반발 #4일 본회의 잡아놨지만 합의 장담 못해
이날 오전 9시 시작된 민주당,한국당,국민의당 3당 원내대표들의 예산안 협상은 이렇게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3당 원내대표들은 점심 식사도 협상장 내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예산 줄다리기'를 계속했지만 협상 결과는 “냉각기를 갖자”는 결렬 선언이었다.
여야는 3일 물밑 협의를 계속해 4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생각이다. 내년 예산안의 법정 처리 기한은 2일이었다. 그러나 전망은 예측불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예산'인 공무원 증원을 놓고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일자리 안정기금(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외에 법인세 인상 등을 놓고도 견해차가 커 합의를 장담할 수 없는 것도 변수다. 여야가 돌파구를 못 찾을 경우 최악의 경우 연말까지 예산안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무원 증원 예산(5300억원)은 증원 규모가 쟁점이다. 정부 안에는 공무원 1만2200명을 늘리는 예산이 담겨있다. 이날 막판 회동에서 민주당은 증원 규모를 1만500명 수준으로 줄이는 안을 제안했다. 반면 한국당은 7000명 증원, 국민의당은 9000명 수준의 증원을 제안했다. 원내대표들은 각 당이 내놓은 안을 놓고 조율을 시도했지만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공무원 증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만큼 1만 명을 마지노선으로 고집하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최종 담판 전에도 “새 정부의 정체성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온전히 다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혈세 낭비’ 등을 이유로 1만명 증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 도리”라며 “(민주당에서) '1만' 글자를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국민 혈세로 공무원 늘리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라며 “예년 수준의 필수 소요 인력만 허용할 수 있고 더는 증원 안 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안정기금 예산은 ‘1년 한도’의 부대 의견을 다는 것이 쟁점이다. 야당은 2019년부터는 근로장려세제와 사회보험지원 등으로 우회 지원을 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시한을 못 받는 건 부적절하다고 맞서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안정자금을 1년만 하자는 것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정우택 원내대표는 “내년뿐만 아니라 2019년에 연결되는 건 강력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민 세금으로 기업 임금 보조하는 건 1년 동안만 하고 제도 개선을 잘해서 2019년부터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건데, 정부는 자신이 없으니 약속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2019년부터 안정자금의 규모를 현재 3조원에서 1조5000억원을 낮추는 내용을 넣자는 제안도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올해 예산안은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2일 본회의에서 정부 원안이 자동 상정됐다. 다만 정세균 국회의장은 “현재 교섭단체 간에 예산안 협의가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협상이 타결되면 정부 원안에 대한 수정안을 만들어 표결할 예정”이라며 “원내의석수 분포나 현재 상황을 고려해서 지금은 표결에 임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