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강수사 없이 우병우 불구속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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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근혜(65·수감) 전 대통령에게 삼성 이외의 기업에 대한 ‘뇌물 요구’ 혐의 등을 추가해 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우병우(50·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결과를 17일 발표한다.

검찰, 영장 재청구 안 하기로 결정 #전 서울변호사회장 “사실상 면죄부” #박 전 대통령‘뇌물 요구’혐의 추가 #전체 규모 500억대로 늘어날 듯

특수본은 롯데와 SK가 K스포츠재단에 낸 돈 중 일부를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뇌물 요구)에 포함시켰다. 두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자본금으로 출연한 돈 외에 사업비 명목으로 추가 지원했거나 지원을 검토했던 돈이다. 검찰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45억원을 출연했던 롯데는 지난해 5월 최순실씨가 실소유한 K스포츠재단에 ‘하남시 복합체육시설 건립 명목’으로 70억원을 추가 출연했다가 돌려받았다. 서울중앙지검 롯데 수사팀의 수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SK는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체육인재 해외 전지훈련 예산지원’ 명목으로 80억원의 추가 지원 요청을 받았으나 돈을 내지 않았다. ‘사업 실체가 없고, 금액이 과하다’며 재단 측과 지원액수를 30억원으로 낮추려는 협상을 벌이다가 실제 지원은 하지 않게 됐다.

특수본은 재단이 롯데로부터 받았다가 돌려준 돈에 대해선 ‘뇌물수수’ 혐의를, SK로부터 받지 않은 돈에 대해선 ‘뇌물 요구’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두 혐의는 형법상 수뢰죄에 포함된 범죄들이다. 형법은 실제로 돈을 주고받지 않고 뇌물을 요구하거나 약속을 받아도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전체 뇌물 혐의 규모는 삼성이 제공했거나 약속했던 433억원에서 더 늘어나 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SK에 대한 ‘뇌물 요구’ 액수를 얼마로 보느냐에 따라 뇌물 규모에 증감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최태원 SK 회장은 불기소 처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특수본 수사팀은 주말에도 출근해 수사 결과를 정리하고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공소장을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추가 혐의와 함께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됐던 혐의가 담기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최순실씨와 공모해 433억원의 뇌물을 수수(약속 포함)한 혐의와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는 데 관여(직권남용 및 강요)한 혐의 등이다. 또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을 관리하고, 청와대 기밀 문건 유출을 지시한 혐의도 포함된다.

검찰은 ‘부실 수사’ 논란 끝에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별도의 특별수사나 구속영장 재청구 등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현 상태로 일단락 짓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영장 기각 후 보강수사도 없이 기소한다는 건 사실상 면죄부를 주겠다는 의미”라며 “대선 전후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계속 거론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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